이 작품은 시조다. 시조 하면 대개 딱딱한 형식을 연상하지만 이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유연하고 자연스러워 편안하게 읽힌다. 게다가 참 좋다.
그저 따라 읽기만 했는데도 맑고 청량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맑은 이유는 이 시가 산속 절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공기가 맑은 곳, 정신이 맑아지는 곳에 시가 있으니 맑을 수밖에 없다. 청량한 이유는 이 시가 언어로 적혀 있지만 언어가 없는 세계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제현 시인은 시에서 탁한 것을 몇 번이고 여과해서 기존의 생각과 이미지를 정화하고 있다.
시의 처음, 우리는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만나게 된다. 풍경은 분명 종의 일종이지만 사실 그것은 일종의 소리에 가깝다. ‘뎅그렁’ 울리면 비로소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풍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풍경을 만나, 과감히 그것을 지운다. 사람들이 듣는 것은 다만 소리일 뿐, 안에 담겨 있는 적막의 의미까지는 모른다. 정말 봐야 할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을 듣는 사람의 마음이다. 정말 들어야 할 것은 풍경 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퍼지는 전체의 분위기와 느낌이다.
고요한 산속에서 바람 따라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 몹시 오묘하고 색다르다. 조금 과장하자면 세상의 잡음과 다른, 자연스러운 깨달음의 소리라고 할까.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 앉아 있으면 지금까지 집착하던 욕망들이 참 헛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느낌과 마음을 시인은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의 별빛’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무상이란, 그 위에 뭘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뜻이다. 별빛만 무상일까. 이 시도 무상의 작품이다. 그 위에 무엇을 더할 수 없이, 맑고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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