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시국이 점점 어려워지고 꼬일 대로 꼬일 줄은 그 누가 알았을까. 100만 개의 촛불이 밝혀진 다음 날, 예전에 예약했던 ‘아이다’를 보러가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 ‘아이다’의 사랑이야기를 보면서 머릿속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내내 떠오를 줄이야.
물론, ‘아이다’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할까.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진정한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면 ‘아이다’가 조금이나마 도움일 될 것 같다.
먼저 작품을 설명하자면, ‘아이다’는 잘 알다시피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아이다’를 뮤지컬로 만들어 브로드웨이의 스테디셀러로 만들고 싶었다. 출발은 ‘라이온 킹’보다 빨랐다. 이미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성공시킨 엘튼 존과 팀 라이스는 디즈니사에 뮤지컬 ‘아이다’를 제안 받았다. 하지만 기존 애니메이션 음악을 가져와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 아닌 아예 새로운 노래로 뮤지컬 한 편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창작에 많은 시간을 쓴 탓에 ‘아이다’는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에 이어 디즈니의 세 번째 뮤지컬로 탄생했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뻔하지만 깨우침도 있는 지도자들의 성장기
‘아이다’는 이집트의 노예가 된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 그리고 라다메스의 약혼녀이자 이집트의 공주인 ‘암네리스’라는 세 인물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 강력했던 나라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는 침략 전쟁 중 누비아의 여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온다. 그 중 군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아이다’를 보며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런 아이다를 자신의 약혼녀이자 이집트의 공주인 ‘암네리스’에게 노예로 선물한다. 그런데 라다메스의 시중이자 누비아인인 ‘메렙’은 그 노예가 누비아의 공주인 ‘아이다’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동족에게 알리며 아이다가 그들의 유일한 희망임을 고백한다.
큰 승전보를 알린 라다메스에게 파라오는 암네리스와 7일 후 결혼하라 명하지만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서로의 끌림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다는 누비아의 왕인 아버지가 이집트로 끌려왔다는 이야기에 라다메스와의 관계를 끊고 누비아의 공주로 살아갈 것이라 한다. 이에 라다메스와 암네리스의 결혼식날 아버지와 누비아로 도망치려던 아이다는 결국 발각이 된다.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안 암네리스는 두 사람을 같은 무덤에 생매장하도록 명한다.
디즈니의 공식과 같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이 단순한 공식 안에 나라 간의 침략으로 인한 갈등, 왕권을 향한 음모, 자유를 위한 한 민족의 갈등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특히 인물마다 ‘사랑’ 때문에 성숙해가는 모습을 표현해내 눈길을 끈다. 노예로 끌려온 아이다는 함께 노예로 잡혀온 백성들에게 내 책임이 무겁다며 공주로서 살아가길 거부하지만 결국 정체성을 찾으며 나라를 위해 사는 공주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라다메스는 그동안 침략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으나 아이다와 사랑을 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철부지 공주 암네리스 또한 시련을 통해 현실을 깨닫고 차세대 지도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한 무덤 안에서 생매장을 당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알게 된 암네리스는 이후 파라오가 돼 이집트와 주변국과의 전쟁을 중단한다. 결국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디즈니다운 뮤지컬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번 국정농단과 ‘아이다’는 아무런 연관성은 없지만 각 나라에서 철부지였던 공주들이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백성들을 위해 바로 서는 리더가 된다는 내용을 보며 일종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
○ 강렬한 색채의 배경과 의상…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다운 선택
애니메이션의 명가답게 디즈니는 ‘아이다’의 무대마저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게 꾸몄다. 이집트의 뜨거운 열기를 표현한 듯한 강렬한 빨간색 배경과 실루엣으로 표현된 나일강에 비치는 야자수 등은 3차원의 무대를 2차원으로 표현,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거나 혹은 그림책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많은 공연에서 볼 수 있는 입체적인 영상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코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의 무대와 의상. 암네리스가 처음 등장하는 ‘My Strongest Suit(마이 스트롱기스트 수트)’에서 수영장 장면과 런웨이와 같은 화려한 옷을 소개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마치 위에서 수영장을 내려다보는 듯한 효과를 얻기 위해 플라잉 기술을 사용해 극의 재미를 준다. 또 패션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암네리스를 잘 보여주기 위해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패션쇼를 방불케하는 무대와 수벌의 ‘오트쿠튀르’ 의상은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사진제공=신시컴퍼니 ○ 앙상블의 화려한 액션과 군무, 엘튼 존의 현대적인 음악 ‘혼연일체’
‘아이다’는 조·주연 배우는 물론, 앙상블의 활약도 눈부시다. 주연배우인 윤공주, 김우형, 아이비, 성기윤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이름값을 제대로 해낸다. ‘아리랑’, ‘노트르담 드 파리’ 에 이어 ‘아이다’에서도 버림당한 민족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맡은 윤공주는 또 다른 한(恨)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아내 김선영의 출산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김우형은 라다메스의 남성성을 최대한 끄집어내 무대 위로 표출한다. 더블캐스팅인 민우혁이 소년 같은 이미지라면, 김우형은 상남자 이미지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관계자의 평이 있으니 참고하도록. ‘아이다’로 일명 ‘인생 캐릭터’를 맡았다고 평가 받고 있는 아이비는 호평만큼이나 아이 같이 발랄한 암네리스를 연기한다.
그런데 ‘아이다’에서 주연만큼이나 호평을 받는 앙상블이 있다.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고난도 안무를 소화해내는 20명의 앙상블은 아프리카의 정통 춤부터 절도적인 칼군무와 액션까지를 소화해낸다. 특히 빨간 배경에 활을 들고 있는 라다메스의 군대는 머릿속에 계속 기억될 만큼 인상적이다. 또한 ‘누비아’ 백성 중 공주 ‘아이다’ 옆에서 넘버를 소화하는 배우 지새롬은 이 작품의 ‘씬스틸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짧지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것을 방증하듯 많은 관객들이 “‘아이다’옆에서 노래 부르는 배우, 안 밀리고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다.
‘라이온 킹’으로 호흡을 맞췄던 엘튼 존과 팀 라이스는 현대적인 음악으로 ‘아이다’의 무대를 채운다. ‘라이온 킹’에서 아프리카 감성의 음악이 관객에게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흑인 음악, 가스펠, 락, 발라드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무대에 펼쳐놓았다. 특히 ‘Dance of the Robe’, ‘The God Love Nubia’ 등 침략으로 빼앗긴 땅과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게 해달라는 누비아인들의 외침을 표현한 음악은 우리나라의 ‘아리랑’을 듣는 듯 한 민족의 한(恨)마저 느끼게 한다. 또한 야욕에 가득 찬 라다메스의 아버지 조세르의 ‘Another Pyramid’와 절도 있는 앙상블의 군무는 혼연일체가 돼 악당의 매력마저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넘버는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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