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외풍이 심한 제주 농가주택에서 아침의 서늘한 공기에 잠이 깬다. 거실 한쪽 구석에 있는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고 잠들어 있는 5세 딸아이의 이불을 여며 준다. 아내는 순식간에 타오르는 화목난로 속 뻘건 장작불의 온기를 맞으며 아침상을 준비한다.
따뜻한 김칫국을 두어 모금 삼키고 아직은 자고 있는 딸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제주에서도 시골이라 채널 하나밖에 안 나오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나의 전용차가 된 화물 1t 트럭과 함께 10여 분의 짧은 드라이브를 즐긴다.
소나무와 삼나무, 새로 핀 들꽃, 노랗게 익어 가는 귤나무를 지나 현장에 도착한다. 일터이자 놀이터이며 우리 가족의 미래가 담겨 있는 현장. 기초공사를 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된, 우리 가족의 집을 짓는 현장이다. 밤새 혼자 있었을 똘똘이(진돗개)의 목줄을 풀어주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신다.학워 귤나무 등 다양한 정원수들에 시원한 아침밥을 먹이고 우리 가족이 살 땅을 둘러본다. 1년째 계속된 아침 일과다.
대학 때부터 수학강사로 일하며 몇 개의 학원을 경영한 나는 빡빡한 강의 일정으로 과로가 겹쳐 목 디스크와 만성피로가 생겼다. 그때 간암에 걸리고도 가족을 위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일을 해야 했던 이모부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현일아!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라.”
학원은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매일 신입생이 늘어 학원을 확장 개관할 때였다. 내가 만약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되면 남겨진 아내와 아이, 주변 사람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내와 아이의 잠에서 깬 모습과 잠들 때의 모습을 보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느리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기로. 아이가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고 자연 가까이에서 자랄 수 있는 곳. 아내가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이 조건에 딱 맞는 곳이 제주였다.
결혼하고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어렵게 시험관 시술로 얻은 유나가 우리 부부에게 온 날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제주로 가서 빵 가게를 하자. 아침이면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빵 가게.” 다른 일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20년 경력 수학강사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아내는 답했다. “그럴까? 그럼 아이가 병원 갈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돌 지나고 가자.” 이때부터 난 2년간 제주로의 이주를 준비하게 됐다.
― 조현일
※필자(41)는 서울,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2년 전 제주로 이주해 여행 숙박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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