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 지음/장호연 옮김/520쪽·2만5000원/바다출판사
“이 변화무쌍한 음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로 설명하는 건 잘해도 한시적이고 최악의 경우 헛소리가 된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30여 년 동안 100여 차례 거듭 공연해 온 테너 가수다. 1985년 1월 관객 30여 명 앞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행간마다 빼곡하다.
몇 년 전 클래식전문기자 선배에게 ‘겨울 나그네’ 음반 추천을 청했다. 이언 보스트리지는 답으로 받은 3명 중 한 사람이다. 다른 둘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올라프 베어. 나는 베어가 좋았다.
세 음반을 모두 다시 꺼내 들으며 읽었다. 내게는 보스트리지의 글이 목소리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24곡 중 첫 곡인 ‘밤 인사’에 대해 그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한참 동안 계속되고 있었던 것만 같은 노래”라고 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반복되는 8분음표들이 시종일관 끈질기게 터벅터벅 이어지는 가운데 침울한 하강 음형이 등장한다. 슈베르트는 자필 악보에 ‘걸음걸이의 보통 빠르기로’라고 적었다. 죽음을 향해 추락하는 듯한 걸음걸이가 이 작품 전체의 핵심이다.”
슈베르트는 죽음을 맞기 한 해 전인 1827년 후원자였던 시인 프란츠 폰 쇼버의 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처음 ‘겨울 나그네’ 전곡을 불렀다. 보스트리지가 ‘슈베르트를 매음굴로 이끈,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친구’라 평한 쇼버는 “‘보리수’ 한 곡만 마음에 든다”고 했다. 슈베르트는 “나는 이 노래들이 다른 어떤 노래보다 좋아. 너희도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답했다.
작곡가의 예감은 맞았다. 보스트리지는 “가곡은 고전음악이라는 틈새시장의 틈새에 놓이는 상품이다. 그러나 ‘겨울 나그네’는 셰익스피어의 시, 고흐의 회화에 비할 만큼 인류의 공통된 경험을 이루는 위대한 예술작품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 어떤 곡보다 이 노래를 무대에서 많이 불렀다”고 썼다.
200년 가까이 이 노래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곡 중 하나로 거듭 연주되는 까닭이 뭘까. 지은이는 곡의 짜임새에 주목했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털어놓고 감정을 발산하지만 사연을 알려주지 않는 영혼에게 끌린다. 부족한 이야기에 우리 자신의 사연을 채워 넣고는 그를 각자의 거울로 만든다. 플롯의 부재는 듣는 이에게 다른 부분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 감상의 추동력은 내러티브가 아니라 주제가 서로 통하는 것들을 세심하게 쌓아올린 데서 생겨난다.”
옮긴이는 후기에 “내가 읽은 슈베르트 책 가운데 최고”라고 적었다. 클래식 입문자인 기자는 그에 동의할 자격이 없다. 그저 이 책 리뷰가 ‘헛소리’가 되지만은 않기를 바라며 읽고 썼다. 부끄럽고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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