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강명 씨(41)의 새 장편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에서 북한의 김씨 왕조는 조용히 무너진다. 그렇다고 남북한이 서로 도우면서 행복하게 잘 살았느냐 하면, 아니다. 휴전선은 이름만 ‘분계선’으로 바꾼 채 유지되고 난민 발생을 막고자 남북의 주민들은 분계선에 의해 갈려 있다. 북한에는 통일과도정부가 섰고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됐다. 작가가 실제로 북한 전문가들에게 들었던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졌던 시나리오’다. 그런데 그 다음은?
22일 만난 작가에게 “당신의 소원은 뭔가? 통일인가, 전쟁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북한 인권 보호, 그리고 급변사태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통일, 전쟁, 북한 붕괴 등이 급변사태일 텐데 뭐든 한국엔 재앙일 거다. 남한의 복지 재원은 전부 북한에 지원되고 북한의 저임금 노동자와 남한의 저소득층이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는 “엄청난 혼란이 있을 텐데 충격을 줄이는 게 ‘한반도의 소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가 예상하는 충격은 소설을 통해 드러난다.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반감은 둘째 치고, 치안 공백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데다 마약 수출에 불법이민으로 북한은 이웃 나라에 골칫거리다. 불량 국가, 막장 국가가 좀비 국가가 되고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피했어야 할 설정이 돼버리는 순간이다.
작가는 그렇다고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북한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라면 민족과 이념 사이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장르물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른다. 작가 자신도 “잘 팔리는 대중소설을 내놔야겠다는 욕심으로 썼다”고 말한다. 실제로 소설은 북한의 특수부대인 신천복수대 출신 장리철이 끌고 가는 서사로 이뤄졌다. 장리철이 무정부사회에 가까운 북한에서 범죄조직 연합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이 잔혹한 묘사를 통해 펼쳐진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스릴러소설 작가들인 리 차일드, 돈 윈슬로, 제임스 엘로이를 섞은 작품이다. 신체 난도질이 난무하고 피가 튀기는 ‘19금(禁)’ 장면이 이어지는 데 대해 작가는 “이래도 될까 싶기도 했지만 독자를 사로잡고 안 놔주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장리철을 비롯한 많은 등장인물 중 작가가 애정을 갖는 인물은 유엔평화유지군에 속한 남한 청년 강민준이다. 민준이 선의에 찬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북한 붕괴의 사태에 맞닥뜨려서도 냉소적인, 남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정서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프랑스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면서도 가까운 북한의 참상에는 왜 주목하지 않는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작가는 밝혔다.
설정은 가정이지만 취재와 자료 조사는 충실하다. 북한인권운동단체인 ‘나우’의 지성호 대표에게 주민들의 삶을 상세하게 듣고, 북한군 출신 탈북자 박사 주승현 씨에게 감수를 받았다. 북한 관련 논문과 기사, 저서도 꼼꼼하게 살폈다. 덕분에 1850장 분량의 장편이 빠르고 튼실한 호흡을 갖게 됐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서점에 배포하기도 전에 주문이 몰려 3쇄를 찍었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재미도 의미도 있는 소설’이다. “대중소설이라고 꼭 의미가 없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를 던지고.” 순문학, 장르소설, 논픽션…. 경계를 넘어 두루 써보고 싶은 게 많다는 작가는 글쓰기의 욕심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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