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은 어렵다.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하는 우리와 거리가 먼 소재 같았다. 점점 빨라지는 유행의 주기에 맞춰 벨벳도 금세 떠나갈 것으로 여기고 관심을 접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사진과 마주하게 됐다. 시크한 블랙 벨벳 소재 미디 드레스. 금장 단추와 커다란 버클 벨트, 반짝이는 비즈 리본이 달려 있는 ‘생로랑’의 올해 가을(프리 폴) 컬렉션 사진이었다. 벨벳이 시크하면서도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사진이었다.
그때부터 벨벳 소재의 제품을 찾아 나섰다. 디자이너 브랜드, 제조유통일괄형브랜드(SPA), 동대문표 보세 쇼핑몰 등을 샅샅이 뒤졌다.
벨벳 드레스
‘생로랑’의 크리스털이 반짝이는 소매 깃이 달린 블랙 벨벳 드레스도 눈에 띄었다. 생로랑뿐 아니다. ‘미우 미우’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그려진 벨벳 미디 드레스를 내놓았다. 차마 레드나 그린 벨벳은 시도할 용기가 없어 그런지 블랙만 눈에 들어왔다. 물론 문제는 가격이다. 해외 직구(직접구매) 사이트에서 살펴보니 4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예쁜 드레스들과 안녕하고 좀더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로 눈을 낮춰봤다. 내 안의 공주 감성을 자극하는 미국 패션 브랜드 ‘레베카 테일러’에서는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벨벳 드레스를 내놓았다. 길이가 짧은 것도, 긴 것도 있다.
근데 자꾸 먼저 본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막상 여섯 살 때 엄마가 사 준 벨벳 롱 드레스(핑크색이었다) 원피스 이후 이 나이에 치렁치렁 벨벳 드레스를 입으려니 망설여졌다.
벨벳 스커트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은 벨벳 스커트. 은근슬쩍 ‘나도 벨벳 입었어요’ 할 수 있는 아이템. 어차피 오래 못 입을 것 같아 ‘저렴이’들을 둘러봤다. 동대문표 보세 쇼핑몰에는 핑크, 은색, 금색, 그린 벨벳 주름치마가 즐비했다. 가격은 5만 원을 안 넘었다.
문제는 소재다. 털이 고르지 않고 얇으면 벨벳이 전혀 고급스럽게 느껴지질 않는다. SPA 쇼핑몰에서도 빈손으로 나왔다. 너무 ‘빤딱 빤딱’하게 느껴졌다. 벨벳이되 깔끔한 디자인이면 좋겠지만 주로 화려한 컬러의 제품이 많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막스마라 스튜디오’의 블랙 스커트. 앞은 벨벳, 뒤는 일반 스커트 소재다. 역시 광화문 직장인은 ‘대놓고’보다 ‘은근함’에 끌리나 보다. 배송비, 세금 제외 직구 사이트 가격은 30만 원대. 30% 할인코드도 있어 클릭하려던 순간 손을 놨다. ‘블랙 프라이데이’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40%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 팔리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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