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는 도스토옙스키였다”고 말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사진)은 수많은 문호와 정신분석가에게 매혹의 대상이었다. 프로이트는 이 책에 대해 “지금까지 씌어진 가장 장엄한 소설이고, 소설 속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서사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릴 만하다.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스무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이 독자의 넋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들이 일독을 시도하다가 포기하는 책 가운데 1호라고도 불리는 이 책의 생명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몇 년 전 지인과 함께 이 작품을 음악극과 뮤지컬로 재구성하기 위해 책을 붙들고 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관념과 사유와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나 압도적이지만 끝없이 황량한 에너지에 누구나 한 번쯤 도스토옙스키가 되어버리거나 그가 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느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 ‘이해하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서사는 간단하다. 아버지 표도르의 의문사를 두고 네 아들인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스메르자코프는 누가 친부를 죽였는지 서로 의심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 사이의 욕망과 사랑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서사 안에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진실을 변호하는 서사시, 멈추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인간들의 사랑, 무신론과 유신론, 형제간의 질투와 대립이 등장한다. 인간 내면의 모순 또한 이 작품의 핵심 요소다. 특히 ‘대심문관’ 편에 매혹을 느낀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그 모순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독자에게 남겨놓은 죄의식과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의지, 끊임없는 자기 파괴의 열망, 히스테리적인 독설이 이 작품에서는 팽팽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다. 그것은 거의 ‘성스러운 공포’에 가깝다.
범죄자에게 유난히 애착을 가진 작가의 작품마다 서려 있는 인간의 충동 기질과 죄와 고백 방식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누가 실제로 살인을 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모티브로 위대한 고전이 된 ‘오이디푸스 왕’, ‘햄릿’,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들 작품은 ‘욕망은 왜 이렇게 더럽지만 이토록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소설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