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김은홍]아이 돌상을 덥힌 이웃의 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6일 03시 00분


 서울에서 내려와 전주에서 가정을 꾸린 지 어느덧 12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당시 아내와 나는 둘째 아이에 대한 로망을 접었다. 빠른 결혼으로 첫아들을 낳고 맞벌이와 생활고로 둘째를 미루고 있다가 다시 가져 보려 했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 속상했다. ‘이게 다 하늘의 뜻이려니, 맘 놓고 지내보자’고 하던 터. 지난해 우리는 둘째를 선물 받았다. 첫째는 어떻게 키웠는지도 모르고 힘들기만 했는데 둘째 이놈은 달랐다. 둘째가 움직이는 모습은 하루 종일 눈에 아른거렸다.

 둘째의 돌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손수 돌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물론 장소는 가게 앞 야외 테이블. 이곳은 자그마한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가게는 두어 팀의 손님들이 들어오면 가득 찬다. 그래서 가게 밖에 테이블을 놓아 다른 가게와 함께 사용하는데, 주말에 우리는 그곳을 모두 사용하기로 양해를 구했다.

 화려한 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케이크 커팅을 우아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둘째의 돌을 축하해 주러 온 분들에게 “오셨어요? 식사하고 가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어설프게 테이블도 꾸며 보고 프로그램도 짜 보고…. 아내는 준비하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아 날 째려보기 일쑤였다.

 그것도 잠시. 네 식구의 한복을 직접 지어 선물해 주겠다는 분, 장식에 손이 많이 가니 도와주겠다는 분, 음식을 저렴하게 내어주는 분, 꽃시장을 추천해 주시는 분…. 이웃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손길을 선뜻 내밀어 주었다. 이것이 고향의 정인가. 감사했다. 그 덕분에 둘째의 돌잔치를 작지만 의미 있고 예쁜 축제로 만들 수 있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구슬과 보석 장식으로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인사만 해대는 다른 돌잔치와 많이 달랐다. 매일 마주치며 인사하고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는 분들과 한 상에서 같은 밥을 먹고 어제와 다른 덕담을 나누었다. 아이를 위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이 모든 게 이곳에 내려와서 여유로워진 덕분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의 인상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소싯적에는 ‘레이저’깨나 쏴대던 사람인데 이곳에 와선 인상 좋단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실제로 나는 웃는 모습이 여유로워졌으며 심지어 ‘있는 사람’이란 얘길 듣기도 한다.

 왜일까. 내가 운영하는 가게여서? 편하게 일해서? 아마도, 여유로운 삶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10억 원 만들기’나 ‘한 달 500만 원의 잔액’보다 더 값진 내 가족들과의 하루하루를 기념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내일은 오늘과 같을 수 없고 오늘과 같은 하루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기념하고 추억하며 소중히 간직하는 게 진실된 인생 아닐까.

― 김은홍

※필자(42)는 서울에서 일하다가 전북 전주로 내려가 볶음요리 전문점인 더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혼#돌#돌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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