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에서 외치(外治)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라는 시각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교나 안보를 국내 정치의 돌파구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는 외교, 안보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하는 사안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야당의 반대가 심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밀어붙이고 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에 안보를 끌어들인 것이다.
이 책은 안보와 사생활 보호의 충돌을 법적,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법학자인 저자는 이 과정에서 국가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미국 정부의 행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딱딱한 법률 용어가 아닌 다양한 기본권 침해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이 모양인데 우리나라는…”이라는 생각에 닿게 된다.
요즘 탄핵정국을 맞아 새삼 되돌아보게 되는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하나는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을 자신의 정략적 목적에 활용했다는 죄목이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깡그리 짓밟은 FBI의 불법 사찰은 이미 1950년대 코인텔프로(COINTELPRO·Counter Intelligence Pro-gram)라는 방첩 프로그램에서 정점을 찍었다. FBI는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각계 인사들의 뒤를 캐고 협박했다. 예컨대 흑인 민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을 도청해서 알아낸 외도 사실을 이용해 그에게 “자살하라”는 편지까지 보낼 정도였다. 이런 짓을 벌이고도 FBI 수장인 존 에드거 후버는 무려 48년 동안 국장직을 유지했다. 정치 사찰을 벌인 정보로 대통령과 의원들의 목줄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정치의 ‘흑역사’를 통해 국가 안보가 사생활을 지킬 권리에 우선한다는 논리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법원 허가 없이 국가안보국(NSA)이 전방위 감청을 벌이는 등 미국에서 안보의 비상대권(非常大權)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사생활과 안보는 제로섬 게임이며, 비상시국에서는 사생활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저자는 “양자택일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반박한다.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의 테두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국가 안보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생활을 개인의 비밀 차원으로 격하하는 시도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사생활은 그저 일개인이 전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며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가치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칸트 철학의 대명률과 비슷한 맥락이다. 봉건 잔재를 뛰어넘은 근대 자유주의는 성찰하는 개인이 탄생했기에 가능했다는 정치철학자 래리 시덴톱의 견해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책 제목인 ‘숨길 수 있는 권리’로서 사생활은 민주주의 발전과도 불가분의 관계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아는 개인은 결국 ‘자기검열(self-censorship)’에 빠져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략적인 안보몰이에 휘둘리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려는 노력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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