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씨(32)는 장편 ‘피프티 피플’(창비)에 대해 “북적북적한 소설”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피프티 피플’은 제목대로 주인공이 50명이다. 어떻게 주인공이 50명이나? 작가는 50개의 장(章)에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앞 장에서 ‘조연’이나 ‘행인’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뒤의 장에선 주인공이 된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기도 하다.
사립학교의 보건교사 겸 퇴마사 얘기인 ‘보건교사 안은영’ 이후 1년 만의 신작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이 순전한 장르소설인 데 반해 ‘피프티 피플’은 순문학이다. 장르물과 본격문학을 무리 없이 넘나드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세랑 씨의 위치는 두드러진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이) 서로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늘과 실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가벼움과 무거움을 함께 실험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는 작가이고 편집자이기도 한 자신의 정체성도 이런 실험에 한몫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어렸을 때부터 장르문학에 심취했어요.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스티븐 킹의 호러 소설들을 읽으면서 자랐어요. 출판사 편집자 일을 하면서는 문예지를 만들어서 순문학도 많이 접했고요.”
‘피프티 피플’은 수도권의 한 대형 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병원의 환자와 가족, 친구들이 짧은 장마다 각자의 인생을 풀어낸다. “대형 병원 근처에서 2년 정도 살았어요. 병원이 흥미로운 공간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새벽의 고요함을 찢고 달려가는 앰뷸런스, 병원 침대에 눕기까지 사연을 품은 환자들, 병원 정책에 따라 울고 웃는 지역 주민들…. 병원이라는 곳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와 간호사,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기사, 공중보건의, 제약회사 영업사원 등 다양한 병원 관계자들도 등장해 현실감을 높인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오가는 병원에서 들려주는 주인공 50명의 얘기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층간 소음, 대학 구조조정, 낙태와 피임, 싱크홀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을 짚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소설보다 극적인 현실에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쏠린 터다. 책에 주목하기 어려운 때여서 많이 읽히기는 쉽지 않겠다는 우려에 작가는 “이 책은 올해 나오는 게 맞았던 것 같다”고 답했다. “대학 통폐합, 싱크홀 문제 같은, 이 책에서 담은 이슈들은 우리 사회에 최근 잇달아 불거진 문제들이다. ‘피프티 피플’은 기본을 다지지 않은 사회의 바닥이 무너진다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이 위기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지금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소설에 담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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