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야기가 의혹으로 바뀔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9일 03시 00분


신정균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전

신정균 작가의 영상설치 ‘statement’. 부친이 1980년대 항공기 승무원으로 근무할 때 수집한 자료를 ‘의심스러워 보이도록 편집한 영상’과 나란히 설치했다. 아트 스페이스 풀 제공
신정균 작가의 영상설치 ‘statement’. 부친이 1980년대 항공기 승무원으로 근무할 때 수집한 자료를 ‘의심스러워 보이도록 편집한 영상’과 나란히 설치했다. 아트 스페이스 풀 제공
 ‘서울지방경찰청 금융거래정보 제공 사실 통보서.’

 12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열리는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전에 참여한 신정균 작가(31)의 전시실은 자유로운 듯 답답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겠지만 꼼꼼히 들여다본 이에게 가볍지 않은 의구심을 안기는 건 틀림없다.

 벽면에 걸린 통보서는 2월 신 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날아온 우편물이다. 그는 서울 광진구의 한 공동작업실에서 개인전 준비를 하던 중 경찰로부터 수사 협조 요청을 받았다. 작업실을 함께 쓰던 누군가가 ‘의심스러운 물건을 수집한다’며 그를 신고한 것. 신 씨는 “누가 신고했는지 짐작은 간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작업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꼈다니 약간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며 웃었다.

 그의 관심사는 ‘원래 만들어진 용도와 다른 방향의 의심을 받는 사물’이다. 새빨간 프로야구 응원도구에 새겨진 ‘무적’이라는 글씨, 해외여행 귀국길에 공항 라운지에서 챙긴 아랍어 신문 뭉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항공로 도면 등이 그가 쓰는 재료다. 원래 용도와 달리 ‘불온해 보이도록’ 조합한 설치 작업이 실제 경찰 수사로 이어진 것이다.

 3명의 작가와 함께한 이번 전시에 내놓은 영상설치작품 ‘statement’ 역시 달갑잖은 의심을 살 만하다. 좁은 전시실 벽면에 걸린 모니터에서는 여객기 내부 영상, 경찰과 승무원의 비행기 납치 사건 관련 인터뷰가 엮여 돌아간다. 1985년 발생한 여객기 납치 미수 사건을 회고하는 목소리는 신 씨의 아버지다. 요즘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정윤회 씨와 같은 시기에 스튜어드로 근무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30여 년 전에 겪은 사건과 내가 올해 겪은 경찰 수사 경험 이야기를 교차 편집했다.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묶어 놓으면 ‘그럴싸하게 의심스러워’ 보인다. 까닭이 뭘까. 그 의심은 보편적인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서만 발생하는 것일까. 평범한 이야기가 의심스러운 이야기로 바뀔 때 그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밝혀 보려는 작업이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신정균#공감오류#아트 스페이스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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