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극청(盧克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벼슬은 미관말직인 직장동정(直長同正)에 이르렀을 뿐이다. 가난하여 집을 팔려다가 미처 팔지 못하고 마침 일이 생겨서 지방에 갔는데, 그동안에 그의 아내가 낭중(郎中)인 현덕수(玄德秀)에게 은(銀) 12근(斤)을 받고 집을 팔았다.
노극청이 서울에 돌아와서 집값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을 알고는 마침내 은 3근을 가지고 현덕수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과거에 이 집을 살 때 9근밖에 주지 않았소. 몇 년 동안 살면서 아무것도 수리한 것이 없는데 3근을 더 받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므로 이를 돌려주겠소.”
현덕수 또한 의로운 선비인지라, 거절하고 받지 않으며 말하였다. “어찌 당신 혼자만 경우를 지키고 나는 그렇지 못하게 하시오?” 그러고는 끝내 받지 않았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노극청전(傳)’입니다.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가난에 쫓기면서도 경우에 어긋난 돈은 받지 않겠다고 돌려주는 사람과 그걸 또 거절하는 사람.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재물 앞에서 이토록 맑고 투명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노극청이 말하였다. “내가 평생 의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싸게 사가지고 비싸게 팔아서 재물을 탐내는 짓을 할 수 있겠소? 만일 그대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값을 다 돌려줄 터이니, 다시 나의 집을 반환하시오.”
현덕수는 하는 수 없이 그것을 받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어찌 노극청만 못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마침내 그 은을 절에다 바치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며 말하였다. “말세의 풍속으로 이끗만을 추구하는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末俗奔競之時, 亦有如此人者乎?)”
이규보 선생은 이 전을 쓰면서, 이 일 말고 다른 미담이 더 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오늘날에도 노극청이나 현덕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시위를 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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