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물관을 찾으면 얻을 수 있는 장점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옛것에서 지금을 배우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고, 또 하나는 휴식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김쾌정 한국박물관협회장(69)은 “시국이 어지럽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지쳐 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박물관을 찾으면 숨 한번 고르는 ‘마음의 휴식처’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박물관협회가 올해 40돌을 맞았다. 협회 창립 당시에는 전국 박물관을 다 합쳐서 50곳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전국에 1000곳 이상 생겼다. 박물관협회는 김 회장이 직접 제안하고 키워 온 단체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에서 국사 교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김 회장은 은사의 추천으로 한독 의약박물관에 학예직원으로 취직하면서 박물관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박물관장들의 친목 모임에서 김 회장이 “친목만 도모할 게 아니라 박물관 사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처우도 개선해 보자”며 협회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제안해 놓고 보니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 나였다”며 “이 덕분에 정관 제정부터 시작해서 각종 업무를 다 처리하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까지 협회의 성과로 “박물관 업무 종사자들에게 가장 큰 국제행사인 세계박물관총회를 2004년 일본보다 앞서 개최하고, 학예사들에게 주는 정부 지원금이 늘어나도록 힘을 보탠 점”이라고 꼽았다.
그는 “이제는 각 박물관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국립박물관들을 비롯해 3대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 삼성미술관리움 호림박물관이 지금까지는 소장품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지만 지금은 전시 기획이나 전시 방법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박물관에서 소장품 목록을 책으로 펴내는 도록 하나를 만들어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이나 가독성, 기록으로서의 가치 등을 꼼꼼하게 따져 수준 높은 도록이 나오고 있더군요.”
박물관이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요즘의 추세다.
“책에서만 배우는 것보다 체험학습을 강조하는 최근의 교육 흐름을 박물관이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어린이 박물관이 따로 생겼고, 많은 박물관에서 단순히 소장품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유물을 직접 만들어 보거나 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인들은 요즘 박물관을 ‘힐링’ 코스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주변 조경을 공원처럼 꾸민 후 용산가족공원과 연결해 놓았다. 박물관을 찾으면 자연스레 산책이나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폐교한 시골 분교 건물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회장은 요즘 세계 어딜 가든 방문지의 박물관을 꼭 둘러본다.
“세계 어딜 가서 봐도 똑같은 유물은 단 한 점도 없습니다. 모든 게 달라요. 수많은 전시품이 또 각각의 역사와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앞으로 박물관이 ‘공감’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인천에 있는 이민사(移民史)박물관에 갔다가 당시 사람들의 처절함이 느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과거와의 ‘교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박물관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박물관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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