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의 독서일기]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엮는 건 진솔한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일 03시 00분


에쿠니 가오리, 쓰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남녀의 사랑을 여성 작가는 여성(왼쪽 사진), 남성 작가는 남성 입장에서 썼다. 동아일보DB
남녀의 사랑을 여성 작가는 여성(왼쪽 사진), 남성 작가는 남성 입장에서 썼다. 동아일보DB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재. 그 사이에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때로 비극으로 끝나 삶을 파멸시킴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짙은 본성이고 우리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중요한 원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남자 주인공 준세이는 미술품 복원가로 일하며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다. 고미술품 복원을 통해 미래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직업과 비슷하게, 예술적 감성을 교감했던 과거의 여인 아오이와의 약속을 잊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갈림길에서 오래도록 방황한다. 추억으로 가슴앓이하며 미련하게 미래의 약속을 기다리는 지루한 사람으로.

 남녀 작가가 각각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쓴 이 소설은 서로에게 10년의 세월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인 양 두 주인공이 다시 만나 약속을 완성하며 끝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지고지순한 약속이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요소가 있었기에 10년이라는 기다림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당연했던 것 같다.

 예술은 종교와 권력을 위해 처음 시작된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영원한 주제, 사랑이라는 무한하고 열정적인 재료를 만나 발전하게 된다. 인류 보편의 감정인 사랑을 만나 비로소 예술은 꽃을 피운 것이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베토벤의 서정적인 곡 ‘엘리제를 위하여’부터 아름다운 사랑의 향연을 보여주는 클림트의 그림까지. 우리는 사랑 덕분에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예술의 정수(精髓)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수세기 전 만든 작품에 후대의 우리가 여전히 감동하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시키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10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준세이와 아오이의 감정이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누구나 시간을 초월해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
 영원하지는 못하겠지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간에서 해방되고 타인과의 감정 소통에서 더 진실할 수 있다는 그 달콤함이. 행복함과 애틋함, 간절함 혹은 처절함. 때때로 사랑은 온갖 정제되지 않은, 차마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벌거벗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지치게도 만든다. 그럼에도 나를 더 밀도 있게 만들어주는 것, 그건 역시 사랑이다. 그래서 언제나 사랑하고 싶다. 사랑할 수만 있다면 나도 더 진하게 예술에 젖어들 수 있을 테니.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
#냉정과 열정 사이#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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