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박한규]서울 여수 진해 김천, 어디가 고향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일 03시 00분


 결혼해 독립하기까지 15번 넘게 이사하고, 6번 직장을 옮겼으면 예사로운 이력은 아니다. 교편을 잡으셨던 부친의 직업도 한몫했지만 이 유별난 여정의 선물 하나를 멍에처럼 안고 산다. “고향이 어디인가요?”

 지역 차별을 막기 위해 고향 묻지 않기 운동도 있었지만 여전히 아주 흔한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뭐가 고향인가요?” 현대인에게도 태어난 곳, 어린 시절 추억이 많은 곳, 피붙이나 친구들이 많이 사는 곳 그리고 선산(先山)이 있는 곳 중 두 가지 이상 요건을 갖춘 곳이 고향이라면 나는 고향이 없는 부초(浮草)다.

 7군데 직장을 전전(?)하면서 행인지 불행인지 1981년부터 시작한 서울 살이를 벗어나 양념 같은 지방 살이 기회가 3번 있었다. 서른여섯이 된 1998년부터 여수에서 1년 반, 마흔여섯이 된 2008년부터 진해에서 6년 그리고 쉰셋이 된 2015년부터는 김천에서 살고 있다.

 여수는 경상도 출신에게 정서적으로 다소 생경한 곳이었지만 재미있게 살았다. 라면을 먹을 때도 다섯 가지 이상 반찬을 내놓는 식문화는 황홀했다. 여름날 참장어의 담백한 맛은 지금도 가슴을 두드린다. 미리 알았기에 이삿짐을 푸는 날 처에게 딱 한마디 했다. “가급적 사 먹자.”

 진해는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이라 친구도 많고 성장기를 보낸 경남이라 편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중년이고, 4년은 홀로 생활했으니 사방 날아다녔다. 남해에서 함양, 밀양까지 산, 들,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 보름달빛이 좋은 어느 초여름 밤, 진해 미군기지에서 쏘아 올리는 미국 독립기념일 축포에 넋이 빠져 타고 있던 친구의 요트가 방향을 잃는 바람에 해군 기동타격대가 출동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누구나 알기는 하지만 발을 디뎌 본 적은 없는 김천! 교통의 요지라 주변 5일장 쫓아다니다 반년이 흘러갔고 자두로 시작해 감으로 마감하는 과일에 젖어 지내다 벌써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자식 없이 부부만 지내는 노년 생활 연습도 하면서.

 작년 3월 초, 13일 동안 걸어 마음의 고향으로 삼게 된 지리산 둘레길 창원마을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길에는 아무것도 없거나 무한히 많은 것들이 있다. 결국 각자의 눈으로 들어와 가슴에 남는 것들만 존재한다.’ 인생길이라고 다를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든 가슴에 남기는 것은 각자 몫이다. 가요 ‘고향이 좋아’에서는 타향은 정이 들어도 고향이 될 수 없다 했지만 고향이 없으면 타향도 없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박한규
 
※필자(54)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결혼#독립#이사#고향#여수#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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