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석의 시간여행]당파 싸움과 망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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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 세운 탕평비. 당쟁 타파를 주창했다.
조선 영조 때 세운 탕평비. 당쟁 타파를 주창했다.
 야당이 두어 개 분립해 있는 판에 여당이 다시 두 쪽으로 나뉘는 판국이다. 역사 교과서 같은 데서 듣곤 하던 이른바 사색당파의 재림인가.

 지금처럼 정당이 없던 왕정 시대에도 당파는 있었다. 유권자가 없고 유권자와 연결되는 조직체가 없다 뿐이지 일인 권력의 궤도를 따라 정치적 이권과 주도권을 다투는 정파의 존재는 지금 못지않게 강고하고 변화무쌍했다. 떼 지어 모이는 무리로서의 당, 패거리가 갈리는 당파. 그 폐단으로 자주 거론되던 우환이 ‘당화(黨禍)’였다. 당파 싸움으로 인한 재앙.

  ‘당화가 오늘날 망국의 조짐이 되고 있습니다. 식자들이 한심스러워한 지 실로 오래입니다. 상호 배격과 알력의 습관은 고치기 어렵고, 시기하여 상극하는 마음은 더욱 고질이 되어….’(숙종실록, 1706년 4월 2일자) 

 상습적 불화와 내분이 확대 심화를 거듭하며 망조로 굳어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310년 전 국왕 보좌진의 건의다. 왜란과 호란을 거듭하며 국망의 위기에서 연명해 왔는데, 이제는 외침이 아닌 내란으로 나라의 기틀이 흔들린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의 당화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한편이 다시 반쪽으로 나뉘어, 자기편이 아니면 백이숙제라 할지라도 탐욕스럽다 합니다. 위로 재상으로부터 아래로 말단 관리까지 죄다 사투(私鬪)에는 능하나 공사(公事)에는 젬병입니다.’(숙종실록 1703년 2월 10일자)

 공과 사가 뒤엉킨 채, 공적인 일을 사적인 방식으로 처리하고 공적 명분을 빙자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313년 전의 정경이다.

  ‘공직을 마치 나그네 여인숙 대하듯 하고 벼슬길을 전쟁판으로 만드니, 대체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인지, 군자가 소인을 공격하는 것인지 소인이 군자를 공격하는 것인지 알지 못할 지경입니다. 갑이 나아가면 을이 물러나는데 그 다투어 빼앗음이 능수능란하며, 좋아하고 미워함이 극과 극을 달립니다.’

 국록을 먹으면서 자기 편리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당을 이루고 헤쳐 모여 가며 시기하고 모함하는 것으로 일을 삼을 때, 그 화가 나라를 망치는 데에 이를까 걱정한다는 조언이 계속 왕에게 올라간다. 1710년이 되었다.

  ‘시국에 관한 파벌의 의견이 서로 팽팽히 맞서 불화가 오래 누적되었습니다. 당파싸움의 재앙이 이 지경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지 않은 적이 동서고금에 있었습니까.’(숙종실록 5월 27일자)

 그 후 200년이 지나 나라는 망했다. 망국 10년 후. 왕조실록의 시대에 이어 새로 생긴 대중신문의 창간호에 각계 인사의 기고가 실렸는데, 그중 ‘조선인의 약점은 당파열(黨派熱)’이란 제목의 글이 있었다.

  ‘당 안에 당이 있고 파 안에 파가 있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폐단이 있는데, 비단 요즘만이 아니라 조선 역사를 일관한 바이다. 이는 실로 사회생활에 있어 조선인 공통의 결점이며 어떤 분야이건 발전을 저해하는 일대 원인으로 생각된다.’(동아일보 1920년 4월 1일자) 

 기고자는 일본인, 경성지방법원장이다. 동족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풀지 못한 과제가 이민족 통치하에서 타율적으로 재론됐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
#탕평비#당쟁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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