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역사에서 후원자들 위세가 등등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미술 시장이 형성되기 전 후원자들은 대다수가 주문자였습니다. 미술가들은 주문과 후원으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지만 창작 과정에서 이들 의견을 경청해야 했어요.
19세기 후원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예술을 현실적 권위로 장악하려는 애호가가 아니라 순수한 예술 보호자가 모범적 후원자로 간주되었지요. 후원자들은 예술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되 제작 과정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어요. 자신과 가문의 위상, 정치력을 강화하려는 후원의 목적도 약화되었지요. 그 대신 미술가를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고, 예술 의지를 북돋고자 애썼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만남’에는 당대의 이상적 후원자 알프레드 브뤼야스가 등장합니다.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로도 불리는 그림은 당시 유행 판화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판화 속 교외는 그림에서 몽펠리에 근교로 바뀌었습니다. 방랑하는 유대인은 성서 속 진리의 증인으로 묘사했지요. 그림 속 하인과 개와 함께 화가를 마중 나온 후원자의 태도는 정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장엄한 역사화에나 어울리는 커다란 화면을 평범한 일상으로 채운 그림은 당대의 혹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림 속 화가의 당당함을 오만한 예술가의 허영심이라 비아냥거렸습니다. 하지만 후배들 생각은 달랐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 속 오묘한 하늘빛 때문에 몽펠리에를 무척 동경했어요. 폴 고갱은 화가를 따라 ‘안녕하세요, 고갱 씨’를 남겼지요.
도자전이 열리는 서울 서촌골목 안 작은 갤러리를 찾았습니다. 정직함과 정겨움이 묻어나는 도자기는 여럿의 후원으로 지리산 자락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구운 것이랍니다. ‘고마움에 꼭 갚음하겠다.’ 후원자들이 작가를 믿고 기다려 준 시간도 3년이 흘렀습니다. 전시는 작업장 완공이 더뎌 마음을 태우던 작가가 후원자들에게 도자기를 한 점씩 선물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도자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끝없이 감사 인사를 건네는 작가와 후원자들로 전시장은 북적였습니다. 도예가는 자신을 예외적 개인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후원자들은 스스로를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손님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미술을 매개로 펼쳐진 진짜 만남의 장에서 관객들은 덤으로 훈훈함을 선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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