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천 “30년 전만 해도 특급호텔서 한국인 보기 힘들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2일 03시 00분


‘35년 호텔리어’ 은퇴 김우천씨

김우천 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시설팀장(왼쪽)이 퇴직을 앞둔 14일 일일 총지배인으로 나서 객실팀과 함께 객실의 침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그는 35년을 한 호텔에서 일하며 인정받은 비결로 낮은 자세와 배우는 태도를 꼽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제공
김우천 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시설팀장(왼쪽)이 퇴직을 앞둔 14일 일일 총지배인으로 나서 객실팀과 함께 객실의 침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그는 35년을 한 호텔에서 일하며 인정받은 비결로 낮은 자세와 배우는 태도를 꼽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제공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함.’

 특급호텔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호텔이 화려하게 빛나려면 누군가의 수고가 필요하다. 크리스마스처럼 더 빛나야 하는 시기일수록 음지에서 일하는 이들의 수고는 늘어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35년을 근무한 김우천 전 시설팀장(60) 같은 사람이다. 김 팀장은 1981년 10월부터 이달 16일까지, 35년 열정을 오롯이 한 호텔에 바쳤다.

 “집안 살림은 잘 몰라도 호텔 살림은 꿰뚫고 있죠.”

 김 전 팀장은 1981년 군에서 제대한 후 기술직 공무원이 되려고 했다. 관련 학원에 갔다가 원장으로부터 호텔에서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우연히 시작된 호텔리어의 삶이지만 그는 “한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매순간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그는 퇴직하기 직전까지도 매일 오전 7시면 호텔에 나왔다. 정식 출근 시간보다 2시간 빠르다. 그는 아침마다 호텔 곳곳을 돌며 시설에 이상이 없는지 살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는 손님들이 보게 될 마지막 호텔의 모습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호텔을 찾는 손님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기 위해 그는 늘 긴장 상태였다. 최근 방문이 부쩍 늘어난 러시아인 손님들은 한겨울에 냉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고객은 냉방기기에 표시된 최저 온도인 16도까지 왜 내려가지 않느냐며 한밤중에 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낮은 자세에 더해 그의 35년 호텔리어 인생을 지탱한 건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다. 오랜 세월 그의 취미는 ‘다른 호텔에서 자보는 것’이다. 그는 해외 유명 호텔은 물론이고 지방의 작은 호텔에도 배울 점이 한두 가지는 있다고 말한다.

 “지방 공항 근처의 한 호텔을 가보니 체크아웃 후에 몇 시간 있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 고객들을 위한 전용 라운지와 샤워시설을 갖췄더라고요. 그런 배려는 고객을 다시 찾게 만들죠.”

 그가 호텔에서 일한 30년 넘는 시간 동안 호텔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호텔을 찾는 사람 10명 중 9명은 외국인이었다. 서울 특급호텔에서 한국인을 보기란 정말 힘들었다. 특급호텔 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호텔 건립을 독려하며 호텔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쟁 호텔이 늘며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도 한층 더 세련되게 변모해야 했다. 외국계 회사 사무실로 가득했던 호텔 1∼3층은 카페, 연회장, 피트니스클럽, 사우나 등으로 바뀌었다. 모두 김 전 팀장의 손을 거친 곳들이다.

 그러는 사이 호텔을 찾는 사람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10명 중 3, 4명은 휴식을 즐기고자 호텔에 오는 한국인들이다. 내국인 방문이 늘어난 만큼 호텔도 변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2015년 8월 노상덕 총지배인이 부임했다. 김 전 팀장이 입사 이후 함께 일한 총지배인 14명 가운데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김 전 팀장은 잠시 호텔을 떠나지만 곧 돌아올 계획이다. 한국 호텔이 발전하는 만큼 그 역시 아직 할 일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호텔 측도 그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그의 성실함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퇴직을 이틀 앞둔 14일 그에게 일일 총지배인을 맡기기도 했다. 어떤 선물보다 갚진 은퇴 선물이었다. 그보다 앞서 그는 대학생 막내아들에게서 “아빠처럼 사는 게 내 소망”이란 말을 들었다. 남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
#호텔리어#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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