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20년 전 특별했던 그 음식, 일상으로 들어와 보다 화려해 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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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변화상

 차로 30분은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버스로는 열 정거장이 넘었다. 그나마 그 정도 거리에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8차로 도로 옆에 서 있는 2층짜리 단독 건물을 들어설 때면 가슴이 뛰었다. 그곳을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아이도 그랬고 큰돈 써야 하는 부모에게도 그랬다. 대다수 아이들이 집 아니면 햄버거집에서 생일파티를 열던 시절 그곳에서 파티를 여는 친구는 뭔가 특별해 보였다. 그곳에서의 생일파티가 부의 상징까지는 아니어도 부러움의 대상 정도는 됐으리라. 1990년대 중반까지 그 곳은 그런 존재였다.

 그곳은 피자집이다. 20여 년 전 피자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다. 뭔가 특별한 음식이었다. 아이들의 생일파티 장소가 햄버거집을 거쳐 피자집, 피자집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바뀌고 지금은 호텔을 빌려 생일파티를 여는 모습도 일상화된 그 세월 동안 피자의 의미는 변했다. 맘 잡고 먹는 특별한 음식이 아닌 아무때나 시켜 먹는 배달 음식, 지금의 피자가 갖는 이미지다. 대중화됐고 일상화됐고 저렴해졌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는 동안 피자는 보다 화려해졌다. 과거에는 얇고 둥근 붉은 햄만 올려 있어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지금은 커다한 새우가 통째로 올라간다. 허연 밀가루 반죽이 전부였던 피자 테두리에는 언젠가부터 치즈가 들어갔다. 부드러운 고구마가 테두리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설렘으로 남아있는 피자의 변화상을 짚어 봤다. 주요 대상은 1985년 한국에 진출한 피자헛 그리고 1990년 한국에 첫 매장을 낸 도미노피자다. 피자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바뀌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피자헛과 도미노피자의 2000년대 이후 판매 순위를 알아봤다.

 아쉽게도 2000년 이전에는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그리고 피자 마니아들의 증언으로 추억해 볼 뿐이다.

인기 불변 스테디셀러들

피자헛 슈퍼슈프림피자
피자헛 슈퍼슈프림피자
 국내에 상륙한 미국식 피자의 대명사는 슈퍼슈프림피자이다. 햄과 피망 등 여러 재료가 골고루 들어간 콤비네이션 피자였다. 피자헛에 따르면 피자헛이 한국에 들어온 1985년부터 무려 18년간 판매 순위 1위는 슈퍼슈프림피자였다. 2003년 피자헛의 매출 순위를 보면 1위가 슈퍼슈프림 리치골드, 2위가 슈퍼슈프림 팬, 3위가 슈퍼슈프림 치즈크러스트였다. 엣지라 불리는 테두리만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의 선택은 슈퍼슈프림이었다.

 피자헛 마니아를 자처하는 최정하 씨(35)는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 먹는 음식을 찾듯이 피자도 처음 접했을 때 즐겨 먹던 것을 가장 많이 먹었다”며 “슈퍼슈프림은 뭐랄까 다른 피자에 비해 알찬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피자헛은 슈퍼슈프림의 고급 버전인 엑스트리마를 내놓기도 했다. 슈퍼슈프림보다 토핑 크기가 커졌다. 덕분에 2004년과 2006∼2008년 판매 순위 1위는 엑스트리마였다. 물론 그때도 슈퍼슈프림이 인기 순위 상위 3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피자헛은 이후 슈퍼슈프림과 엑스트리마 메뉴를 단일화하기로 했다.

 피자헛 관계자는 “소비자 조사를 진행했을 때 엑스트리마보다 슈퍼슈프림의 인지도가 더 높았다”며 “슈퍼슈프림을 엑스트리마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며 메뉴를 합쳤다”고 말했다. 슈퍼슈프림은 2016년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도미노피자 포테이토피자
도미노피자 포테이토피자
 피자헛에 슈퍼슈프림이 있다면 도미노피자의 스테디셀러는 포테이토피자였다. 포테이토피자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두툼하게 썰어 올린 감자의 맛에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피자헛 로스트비프피자
피자헛 로스트비프피자
 이윤수 씨(36)는 “언젠가부터 동네에도 작은 피자집이 생기면서 기존 콤비네이션 피자들은 어느 곳이나 비슷해진 느낌이었지만 포테이토 피자만큼은 달랐다”고 말했다. 포테이토와 함께 불고기 피자도 인기였다. 미국 피자 회사들이 한국인을 겨냥해 만든 대표 메뉴가 불고기 피자다. 사실 불고기는 양식의 한국화를 이루기 위해 가장 쉽게 쓰이는 대표적 메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말이다.



화려해진 테두리·토핑 경쟁

피자업체들의 차별화 경쟁은 해산물 같은 고급 토핑 사용에서부터 치즈, 테두리, 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도미노피자가 15가지 국산 곡물을 사용해 만든 도로 선보인 피자. 도미노피자 제공
피자업체들의 차별화 경쟁은 해산물 같은 고급 토핑 사용에서부터 치즈, 테두리, 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도미노피자가 15가지 국산 곡물을 사용해 만든 도로 선보인 피자. 도미노피자 제공
 슈퍼슈프림과 포테이토피자가 한국인들의 입맛을 붙잡고 있을 때 피자 업체들은 테두리 경쟁에 나섰다. 차별화 포인트를 토핑이 아닌 밋밋했던 테두리를 바꾸는 데 둔 것이다. 시발점은 피자헛이 1996년 치즈크러스트피자를 내놓은 것이다. 테두리 안에 치즈가 들어간 것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퍽퍽한 테두리를 안 먹고 버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치즈크러스트가 나오며 테두리까지 다 먹는 것이 일반적이 됐다. 피자헛은 2003년 리치골드를 내놓으며 다시 한 번 테두리의 진화를 이룬다. 치즈에 고구마의 달콤함까지 더해진 테두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도미노피자는 더블크러스트라는 피자를 선보였다. 이 피자는 도(dough) 사이에 치즈를 넣은 제품이었다. 피자의 바탕인 도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피자헛은 2010년에 손으로 직접 두드려 만들어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 ‘찰 도’를 개발했다. 찰 도를 활용한 더스페셜 피자는 2010∼2012년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도미노피자 킹프론 씨푸드피자
도미노피자 킹프론 씨푸드피자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토핑 종류가 확대되기 시작한다. 핵심은 해산물이었다. 2003년 도미노피자가 업계 최초로 새우가 들어간 해산물 피자를 내놓았다. 이후 새우는 피자 업체들이 신메뉴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 재료가 됐다. 도미노피자의 쉬림푸스(2010년) 씨푸드퐁듀(2015년) 그리고 올해 킹프론 씨푸드 등 새우를 주재료로 한 피자들은 나올 때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피자헛 통베이컨 스테이크피자
피자헛 통베이컨 스테이크피자
 해산물뿐만 아니라 피자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고급화되고 있다. 고기는 과거 햄이나 잘게 썬 고기가 아닌 직화 스테이크 등이 올라간다. 피자 업계에 따르면 여름철에는 해산물 피자가, 겨울철에는 육류를 활용한 피자가 상대적으로 인기다. 피자를 만드는 데 빠질 수 없는 치즈는 전통적인 모차렐라 치즈에서 카망베르 파르메산 등도 쓰인다. 보코치니, 프로볼로네, 체다, 커티지 생치즈, 만체고, 로마노 크림 등 이름조차 생소한 치즈들까지 활용되고 있다. 피자가 아무때나 시켜 먹는 음식이 된 지금도, 여전히 피자에 설레는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아직 피자의 참맛을 못 느껴본 누군가를 위한 노력들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피자#도미노#피자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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