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변에 빈 곳이 사라지고 큰 틀이 정해졌다. 이 즈음엔 형세 판단을 해 봐야 한다. 대략 집을 세어 봐도 흑이 10집 이상 많다. 게다가 흑에는 약한 돌도 없다. 고작 60여 수를 뒀을 뿐인데 흑이 스르륵 백을 밀어 버린 것이다. 이창호 9단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홍기표 4단의 행마가 느슨했던 탓도 있다.
백 64, 66으로 하변 흑 대마를 공격해 보지만 이 대마는 고슴도치처럼 단단해서 손을 잘못 댔다간 거꾸로 찔릴 수 있다. 흑 67이 이 9단의 넓은 안목을 보여 준다. 자체로 큰 끝내기이면서 하변 백을 압박하고, 좌하 백 귀의 뒷맛까지 노리고 있다.
흑으로선 이런 수가 정말 갑갑하다. 가진 건 소총밖에 없는데 철갑을 두른 전차가 밀려오는 듯한 형국이다.
백은 이제 ‘모 아니면 도’의 시점까지 몰렸다. 하변 백이 약하지만 흑 귀를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상황. 눈 딱 감고 백 68로 쳐들어간다. 참고도 백 1로 붙여 귀에서 살고 싶지만 흑 6으로 씌우면 하변 백은 빈사 상태에 빠진다. 홍 4단은 백 72의 변화구로 흑을 현혹하려 한다. 여기서 흑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유리한 형세니 참아 둘까 아니면 강하게 반발해 격차를 더 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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