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편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유봉이 양딸 송화를 데리고 소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장면이었다. 아버지가 앞장서 걸어가면 여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가 쥐여준 새끼줄을 꼭 붙잡고 가던 그 장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과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하는 운명이기에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어쩌면 송화의 심정과 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이 먼 상태에서 신체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길을 느끼고, 가끔은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제대로 된 길을 찾아내던 그 모습.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네 인생은 유봉처럼 앞장서서 새끼줄로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기도 하고 험난한 곳에서 넘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나온 길을 거꾸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꾸라지고 비틀대고 헛디디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진리를 배우고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건 틀림없지만 그 여정에 황금 같은 배움과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어 좀처럼 주춤거릴 수 없게 된다.
레프 톨스토이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사진)를 통해 우리에게 보다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조언해준다. 인생의 마지막 2년을 남겨둔 대문호가 자신의 생을 회고하듯 쓴 주옥같은 글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가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스스로를 완성된 인간으로 다듬으며 살아갔는지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나 자신의 삶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겠지.
송화에게 새끼줄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이 책이 지혜와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가리켜줄 나침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위기의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자갈밭을 만나도 짐 가방에서 두툼한 신발을 꺼내 신고 걷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꽃길도 비단길도 나오고 지나간 날을 돌아볼 날도 반드시 오겠지. 오늘 하루가 조금 고단했어도 그런 내일은 올 것이다. 인생이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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