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서 취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성스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숭고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만큼이나 불명예스러운 행동이다.”
뭐, 당연한 얘기를 이토록 진지하게 하시나. 그래도 이런 말투가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매력인 걸. 주취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몇 장 읽고 나면 소설은 저자와 동명의 소설가가 화자로 등장해 팬 사인회에서 페트로니유 팡토라는 술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국내에 드문, 여성 예술가 두 명의 우정(?)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전작들처럼 이야기 자체가 기발하다는 느낌은 소설 초중반에는 많이 들지 않는다. 노통브는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가진 팡토와 함께 샴페인을 카페에서 마시고, 시음회에서 마시고, 스키장에서 마신다. 음주로만 따진다면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의 레퍼토리가 더 다채롭다.
‘부르주아’ 출신으로 이미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노통브와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이제 막 소설가로 데뷔한 팡토 사이에 질투와 애정이 교차하며 흐르는 묘한 긴장으로 소설은 힘을 얻는다.
소설은 노통브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팡토의 실제 모델은 동료 프랑스 소설가 스테파니 오셰로 알려져 있다. 책 속 팡토의 소설 제목도 실제 그의 소설 제목을 살짝 비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결말은 또 뭔가. ‘위험을 동경하다 살해당하는 셰익스피어’가 예술(가)의 운명이라는 얘기? 복잡하게 생각지 않아도 좋다. 그냥 죽죽 읽어도 발랄함 속에 하드코어한 면을 숨기고 있는 노통브니까. 단, 비극적 최후가 싫다면 빈속 음주는 하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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