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루한 소재를 빛나게 만든 이야기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1일 03시 00분


◇스파링/도선우 지음/376쪽·1만3500원/문학동네

 “고아 소년이 학교에서 주먹을 휘두르다 소년원에 가서 권투를 배우고 세계 챔피언이 됐다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이 낡고 닳은 소재를 2016년에 읽게 되다니….”(평론가 신형철)

 소설 ‘스파링’은,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의 소설이다. 수십 년 전 만화나 영화의 소재로 변주됐을 법한 이 소설은 그러나 올해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소설에 첨부된 심사평을 읽어보면 심사위원들이 소재의 고루함에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결국 이 소설에 손을 들어준 것은 이야기성 때문이다. 신형철 씨는 자신의 심사평에 한마디를 더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흔한 문학교실 한번 다녀보지 않고 오로지 홀로 읽고 쓰는 것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작가다. 도선우 씨의 괴력은 이야기의 흡입력에서 나온다.

 소설은 원조교제를 하던 17세 미혼모가 공중화장실에서 낳은 주인공 장태주의 육성으로 시작된다. 보육원에서 자라나 초등학교에 입학해선 ‘출신성분’ 때문에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학교의 동물들을 돌보면서 위안받지만 아끼던 새를 동급생에 의해 잃으면서 장태주는 세계의 불합리함을 자각하게 된다.

 소설은 예측 가능한 전개를 따라가지만 거친 입말과 애틋한 감성을 교차시키는 작가의 솜씨는 독자를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이끈다. 장태주가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권투를 배우도록 이끌어주는 소년원 담임선생님, 그의 아내, 권투 선생님인 담임의 장인을 통해 작가는 온기와 애정을 전달한다. 소설은 장태주가 세계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이후의 좌절과 절망을 펼쳐 보인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날 서 있다. 태주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제재를 가하는 건 피해자인 태주라는 것, 부실공사로 인해 다리가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 등 이 사회에서 오늘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소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부분도 흥미롭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스파링#도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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