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노동을 수많은 도구와 기계들이 대신 해주는 시대입니다. 그림 작가들도 많은 부분을 보다 간편한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어요. 종이를 자르고 연필을 깎거나 물을 떠오고 붓을 씻으며 물감을 짜는 등 다소 번거로운 과정의 많은 일들을 깔끔한 책상 위의 태블릿PC 하나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림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한 해에도 컴퓨터로 작업한 책들이 무척 많았어요. 그런데 오늘 소개할 책은 수작업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채색한 그림을 자르고 오려서 겹겹이 붙인 다음 촬영하는 일을 반복해 완성한 작품이에요. 페이퍼 컷 아트와 실사 모형을 접목해 제작한 장면들은 평면 종이에 인쇄를 했는데도 입체감과 생동감이 넘칩니다. 눈송이가 날리는 부분은 컴퓨터로 후반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네요.
눈은 휘둥그레,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장면 구석구석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새 이야기가 마음으로 따뜻하게 스며듭니다. 글이 없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입니다.
소녀가 눈밭으로 달려 나가 하얗고 예쁜 토끼를 만들어요. 집 안에서 창밖만 내다보던 또 다른 소녀에게 눈으로 만든 토끼를 가져다줍니다. 얼마 후 눈 토끼가 녹기 시작해요. 둘은 눈 토끼와 함께 집을 나와 숲으로 갑니다. 휠체어를 탄 채 눈 쌓인 숲길을 가기란 쉽지 않아요. 휠체어 바퀴가 어딘가에 걸려 둘은 눈밭에 고립되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두 소녀에게 일어납니다.
작고 소중한 것에 귀 기울이려면 몸을 숙여야 하듯 책상 앞에 몸을 숙여 작업한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는 책이에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