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은 한 사람의 운명 전체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1925년 9월 프리다 칼로(1907∼1954)가 당한 대형 교통사고가 그러했지요. 전교생 중 여학생이 30여 명에 불과했던 멕시코의 명문 국립예비학교에 다닐 때 일이었습니다.
비극적 사고로 건강뿐 아니라 미래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의사를 꿈꿨던 소녀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영민함과 발랄함으로 반짝였던 삶은 이제 과거일 뿐입니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부모 또한 상심이 컸겠지요. 하지만 이들은 한숨을 거두고 딸에게 미술 도구를 마련해 주고 침대 천장에 거울도 달아 주었습니다. 미술은 이렇게 불쑥 낯선 손님처럼 소녀를 찾아왔습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혼자 그리던 소녀는 평생 55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자화상 속 화가는 자주 상처받은 모습입니다. 가시 목걸이를 한 채 피를 흘리기도 하고, 가위로 긴 머리를 자르며 혼란스러워하기도 합니다. 9개 화살이 몸통 이곳저곳에 꽂혀 있기도 하고, 보조기로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 울기도 합니다. 남편의 외도와 아이 유산, 32차례의 대수술과 오른쪽 다리 절단 등 고통스러운 현실을 반영한 자화상들이었지요. 그런데 좀 예외적인 자화상이 있습니다.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입니다. 버거운 삶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림 속 창백한 낯빛과 붉은 포도주빛 의상을 걸친 화가는 우아합니다. 가늘고 긴 목과 얇은 드레스 아래 몸매도 매력적입니다. 그림은 사고가 난 다음 해에 제작되었습니다.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친구에게 애절한 연애편지와 함께 전해줄 목적이었지요. 고혹적인 자화상 선물로 떠나가는 사랑을 붙잡고자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첫 자화상이어서일까요. 화가 특유의 개성적 표현은 다소 흐릿합니다. 그 대신 자신이 존경했던 르네상스 미술가 보티첼리의 영향이 살짝 엿보입니다. 풋풋한 시절의 사랑이어서일까요. 관계 지속을 위한 태도도 세련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침내 실패한 사랑을 위해 처음 완성한 화가의 자화상이 저는 참 좋습니다.
어수룩해 허술함과 속마음을 들키기 일쑤였던 제 인생의 첫날들과 닮아서겠지요. 대부분의 투박함과 어설픔에서만 확인 가능한 진심과 순수가 느껴져서겠지요. 새해 아침, 강렬함과 강인함으로 회자되는 화가 자화상 중 대표작보다 첫 작품이 기분 좋게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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