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해군 2함대 해군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원정 작은도서관’이 지난해 12월 30일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어린이방으로 돌진했다. 푹신한 소파에 앉거나 연두색, 주황색으로 동그랗게 구멍을 낸 곳으로 냉큼 들어가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다. 145m²(약 44평) 규모에 책 3400여 권이 꽂힌 도서관을 둘러보는 부모들과 아이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장병과 가족들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KB국민은행이 만든 도서관의 개관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입을 모았다. 2함대는 북방한계선(NLL)부터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를 비롯해 전북 군산시 어청도까지 수호한다. 제1·2연평해전, 대청해전 등이 벌어진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까닭에 장병과 가족들은 늘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지낸다. 2함대 사령부의 안보공원에는 폭침으로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와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는 ‘천안함 기념관’이 마련돼 이들이 수행하는 임무의 엄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책은 장병과 가족들의 꽉 조여진 마음을 다독여주는 좋은 친구다. 부대 내 도서관은 주말이면 장병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가족들은 자유롭게 책을 볼 곳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이날 원목 책장과 책상을 비롯해 소파, 탁자 등이 갖춰진 도서관을 둘러보던 장병 가족들 사이에서는 “진짜 잘됐어”라는 탄성이 계속 터져 나왔다. 소설책을 좋아한다는 원유애 씨(50)는 “책을 보려면 인터넷으로 구입하거나 차를 타고 도서관이 있는 포승산업단지까지 가야 했는데 이제 아이들과 언제든 편하게 와서 볼 수 있게 됐다”며 반겼다.
남편도 군인인 황철인 중사는 딸 공나윤 양(7)과 함께 도서관을 찾았다. 황 중사는 “나윤이가 도서관을 꼭 봐야 한다며 오늘 유치원까지 빠졌다”고 귀띔했다. ‘소금을 조심해’를 읽던 공 양은 “어린이집에서 읽었던 ‘바빠요 바빠’도 또 볼 거예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바로 옆에서 박준성 군(6)은 ‘와! 공룡 뼈다’를 읽고 있었다. 박 군의 어머니인 김민정 씨(36)는 “학원 몇 군데 외에는 아이들을 보낼 곳이 없어 항상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 씨는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하원 시간이 30분 정도 차이가 나, 추우나 더우나 상가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아늑한 공간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국방부와 해군본부가 운영을 지원하는 이 도서관은 장병뿐 아니라 지역 주민도 이용할 수 있다. 이은우 병장(22)은 “출타하거나 복귀할 때 시간이 남아도 할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자투리 시간도 알뜰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고 말했다.
2함대는 장병과 군무원을 대상으로 독후감 공모전을 열어 포상하고 매달 500번째 도서관 이용자에게 도서상품권을 증정하고 있다. 부석종 2함대사령관은 해상에 출전하는 지휘관에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와 팀워크 구축 방법을 담은 ‘하이파이브’를 선물한다. 부 사령관은 “메마른 정서를 순화하는 데 칭찬만큼 좋은 건 없고 승리를 위해 탄탄한 팀워크는 필수적이다”며 “칭찬하고 기를 북돋워 주라는 당부를 책을 통해 한 번 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서관에 많은 이들이 드나들면서 사랑방 역할도 할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감도 크다. 2함대는 이곳을 각종 문화 활동 공간으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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