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최고(最古) 금속활자 여부를 놓고 8년째 진위 논란을 빚고 있는 가칭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대해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재청이 ‘공개 검증’을 발표하자 한 문화재계 인사는 코웃음을 쳤다. 서지학, 금속공학, 원자력공학, 화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1년 6개월 동안 재조사를 벌이고도 실패한 증도가자 검증을 일반에 맡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는 지적이었다. 이 전문가는 “국가문화재 지정조사에 공개 검증을 시도한 전례가 없다”며 “이럴 거면 도대체 문화재청이 왜 필요한 거냐”고 반문했다.
이날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증도가자 재조사 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1월 13일까지 15일간 전문가뿐만 아니라 국민 누구나 증도가자 분석 결과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며 “공개 검증을 통해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이를 반영해 (국가문화재) 지정 심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이 1년 6개월이나 걸린 증도가자 검증을 전문지식도 없는 일반 국민들에게 15일 동안 맡긴들 과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문화재청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재검증 결과는 더 황당하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12월 8일 단독 보도한 대로 증도가자가 진품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결과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검증 결과 보고서에서 국과수는 “금속활자(증도가자)와 목판 번각본(증도가)의 서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가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반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접합된 흔적이나 균열이 관찰되지 않아 한 몸체로 주조된 것으로 보인다”며 인위적인 조작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활자 제조 시기가 고려시대라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맡긴 1차 검증(2014년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연구 R&D)까지 포함해 2년에 걸쳐 수억 원의 국민 혈세를 증도가자 검증에 투입했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만 키운 채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국가 예산과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됐다.
그러나 검증 실패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으며, 공개 검증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있다. 앞서 2013년 2월 문화재위원회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며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 추진을 보류했다. 그러나 나선화 문화재청장 부임 이후인 2015년 2월 증도가자 지정 조사가 확정돼 그해 6월 지정조사단이 일사천리로 구성됐다. 나 청장은 주무 부처 수장으로서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사과라도 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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