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형이 보내준 보물 상자엔 20년 전 램프의 요정들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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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일 화요일 맑음. 형의 LP 컬렉션.
#234 Chick Corea ‘Return to Forever’(1972년)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 씨앤엘뮤직 제공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 씨앤엘뮤직 제공
 한낮의 먼지처럼 가만한 보통날, 인생 최고의 택배가 도착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과자박스 8개가 집으로 배달된 것이다. 작은형이 평생 모은 LP 컬렉션이다. “난 이제 잘 듣지도 않거니와 이사를 한 통에 둘 공간 역시 마땅찮아서”가 형이 밝힌 양도 이유다. 내게 처음 음악의 세계를 알려준 그 사람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제부터 니 거니까 조금씩 선물하거나 팔아도 돼. 부담 없이 받아.”

 테이프 접합부를 정성스레 칼로 잘라 박스를 개봉한다. 보물 상자를 여는 듯 마음이 두근거린다. 거기 든 레코드 중 절반은 나와 근 20년 만에 재회한다. 우리 가족이 모두 같은 집에 살던 시절, TV 아래 수납장에 과묵하게 기거하던 바로 그 레코드들. 한 장 한 장 손에 다시 집을 때마다 명치가 따끔거린다. 설렘, 그리움, 반가움, 슬픔 따위가 뒤섞여 일어난 괴상한 화학반응 탓이다. 비틀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를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해준 나니아의 옷장들. 대개 성음, 오아시스, 지구레코드의 라벨이 붙은 라이선스 음반들이다.

 금지곡과 불법복제 음반의 시대였다.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LP 표지엔 멤버 4명만이 오려 붙인 듯 서 있다. 한국판에 금지곡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A Day in the Life’가 빠졌단 사실도 모른 채 난 스피커 저편 총천연색 만화경에 마냥 빠져들었다.

 새해를 맞은 건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된 채였다. 첫날 아침, 이제는 나의 것이 된 형의 LP 컬렉션에서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를 빼들었다.

 표지를 뒤집어본다. ‘필립스와 기술제휴-성음’ ‘공윤위 심의번호…’. 뒤표지의 절반은 해설에 할애됐다. ‘…퓨젼-재즈… 리턴 투 훠에버의 첫 작품집….’

 판을 턴테이블에 올린다. 일렉트릭 피아노와 허밍의 반복악절이 램프의 요정처럼 풀려나와 하늘색 융단의 최면을 거실에 펼친다. 드럼과 베이스기타의 물결 위를 낮게 비행하는 플루트 선율을 타고 난 20초 만에 20년만큼 이동했다. ‘우린 언젠가 영원으로 돌아가겠지. 바로 지금 같은 속도로.’ 스치는 별이 말해줬다.

  ‘…오, 저녁 바람, 그건 따뜻한 금빛이었지/모든 게 모여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었어.’(‘Sometime Ago’ 중)

 다시 여행이 시작됐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chick corea#return to forever#칙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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