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머거리. ‘귀 먹은 사람’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청각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가 돼버렸다. 그런데 스스로를 ‘귀머거리’라 부르는 청각장애인이 있다. 여성 웹툰 작가 이수연 씨(28).
“‘나는 귀머거리다’가 올해 200화로 완결됩니다. 새해 목표는 작품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말이다.
이 씨는 자신의 ‘오늘’은 순전히 어머니의 노고 덕분이라는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학창 시절 딸과 엄마는 매일 오전 전철을 기다렸다. 특수학교가 많지 않던 때, 이 씨는 인천 집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했다. 오래 서 있기 힘들어하던 다섯 살 딸을 업고 엄마는 매일 한 시간 반 거리를 오갔다.
적막 속에 사는 딸에게 세상을 들려주고 싶었던 엄마는 수화(手話)가 아닌 구화(口話)를 가르쳤다. 엄마는 자신의 목에 딸의 손을 갖다대 진동을 알려줬고 이 씨는 그 진동을 흉내 내면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부드러운 발음으로 길게 말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는 이 씨의 배에 쌀가마니를 올려놓고 가슴이 아닌 배로 숨쉬게 했다.
“엄마는 제게 모든 세상을 만들어준 분이에요. 엄마가 없었으면 저는 지금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을 거예요.”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싶었던 이 씨는 웹툰을 그려줄 지인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직접 그리기로 결심하고 1년여 전 사뒀던 태블릿을 꺼냈다. 2014년 2월 첫 화가 업로드됐다.
그는 컷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도 허투루 적지 못한다. ‘보청기를 끼면 다 들려요’라는 광고 문구를 본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중학교 시절 기억 때문이다. 당시 친구들은 이 씨가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사람은 스치는 얘기만으로 오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제가 무심코 던지는 이야기에 다른 사람이 상처 받을까 봐 늘 조심해요.”
이 씨에겐 의외의 취미가 있다. 음악 감상이다. 록그룹 퀸과 헤비메탈 밴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가 어떻게 음악을 즐길까.
“라이브 영상을 봐요. 퀸의 라이브 무대 영상을 보면 음악이 느껴져요. 1970년대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외계로 음악 CD를 보냈다는데 그보다는 라이브 영상을 보내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우주에는 소리도 없잖아요?”
자막 없이 한국영화를 감상하는 법도 터득했다. 웹툰에도 그가 영화 ‘왕의 남자’를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장면을 다 외우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장면 순서대로 대사를 정리한다. 그렇게 만든 각본집을 통째로 외워 영화를 다시 감상하는 식이다.
이 씨는 최근 영상편집 기술을 배웠다. 언젠가 영화를 제작하려는 희망에서다. 그가 좋아하는 시(詩)와 시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해요. 그는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고 엄격한 사람이에요. 그런 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한 시간가량의 만남에서 기자는 이 씨에게 마흔여섯 개의 문장으로 질문했다. 서른다섯 번의 질문은 ‘소리’로, 답변자의 정확한 이해가 필요했던 열한 번의 질문은 ‘글’로 물었다. 청각장애인 이 씨와 기자가 대화하는 방식은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입술을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벌리고 소리를 천천히 내면 됐다. 약간의 필담(筆談)이 필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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