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이한일]나는 귀촌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7일 03시 00분


 나한테 주어진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살아가자고 생각했다. 2014년 6월, 35년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났다. 60년간 서울 아파트에서 살았고 직장생활도 해봤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못 해봤던 일을 하자. 도시를 떠나자”고 생각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35년을 일했던 나는 시골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했다. 그간 책상에서 배운 지식은 너무 짧았고 시골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은 전혀 없었다.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는 기술이나 기능이었다. 지금까지 제법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것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기 전 서울시 동부기술센터에 목공 6개월 과정을 등록했다. 적적히 혼자 지낼 시간을 대비해 문화센터에 드로잉과 클래식 음악감상법을 등록했다. 산야초 수업과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 교육, 지리산 귀농학교, 집수리에 도움이 되는 양평 황토집 짓기 교육 등 1년간 귀농귀촌 관련 교육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2015년 2월부턴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땅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다가 들른 곳이 강원 홍천군이었고 지금 내가 자리 잡은 내촌면이었다. 아내의 바람인 ‘서울까지 편도 90분 이내’를 충족했고 마을에 냇가가 있는 곳이었다. 다른 곳을 좀 더 보라는 충고도 있었고 가격도 더 흥정하라는 주변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런 곳이었기에 며칠 만에 바로 계약했다.

 지금까지는 거의 주말마다 친구와 지인들이 방문해 하루 이틀씩 묵고 간다. 그들은 아직은 나를 부러워한다. 주변 사람들 중 시골로 이주하고픈 열망은 아주 강한데 몇 년째 결정을 못 내리고 땅만 보러 다니는 사람이 많다. 나이가 들며 가장 크게 느낀 건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라. 행동하고 실천해라’였다.

 이사 갈 집은 기존에 있던 집을 4개월간 수리해 쓰기로 했다.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던 허름한 농가주택을 수리하고 앞터에 잔디를 심고 마당을 꾸미니 제법 그럴듯했다. 마당 구석에 볼품없이 쌓여 있던 조경석을 재배치하니 아내도 무척 맘에 들어 하는 예쁜 정원이 됐다.

 이웃집에서 얻어온 명자나무, 키 작은 백일홍, 다양한 꽃이 피는 달리아, 키가 큰 칸나를 심었다. 지난해 피었던 자리에 다시 핀 맨드라미와 코스모스, 그리고 장미, 백합, 바늘꽃, 패랭이, 안개꽃, 봉숭아, 목단 등 봄부터 가을까지 정겹고 화사하게 꾸며진 마당이 아침마다 우리를 반겨줬다. 생각날 때마다 두서없이 심은 꽃들이지만 시골 생활 첫해를 흐뭇하고 즐겁게 해줬다.

 올해는 경험을 살려 꽃들의 색과 키를 맞춰 자리를 재정리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무얼 심을까, 전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이것이 시골을 택한 첫 번째 이유였다.

―이한일

※필자(61)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귀촌#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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