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터리. 고즈넉한 그 한편에 오래된 우체국이 있다. 1912년 지어진 러시아풍 목조건물 진해우체국. 현존하는 우리나라 우체국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영화 ‘클래식’에서 손예진이 전보를 보내던 곳이기도 하다.
진해우체국은 흰색 톤에 올리브색, 노란색이 어우러져 단정하고 깨끗하다. 배흘림기둥이 우뚝 솟고 그 위로 아치가 올라간 정문은 특히 매력적이다. 가까운 진해탑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좋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펼친 듯, 뽀얀 건물은 로터리 주변으로 펼쳐진 방사형 가로와 참 잘 어울린다.
중원로터리 주변엔 근대의 흔적들이 즐비하다. 적산가옥이 모여 있는 장옥(長屋)거리, 1912년 지어져 1950년대부터 다방과 문화 공간으로 이어져온 ‘흑백’, 1930년대 지어진 중국풍의 육각 뾰족집 수양회관, 6·25전쟁 때부터 영업해 온 중화요릿집 원해루, 백범 김구의 친필 시비…. 그 흔적들의 출발은 진해우체국이다.
우체국은 그리움과 낭만의 공간이다. 요즘 편지를 많이 쓰지 않지만 그래도 편지는 늘 누군가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진해우체국 앞에 서면 유치환의 시 ‘행복’이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아쉽게도, 진해우체국 건물에선 현재 우체국 업무를 보지 않는다. 우체국 업무는 바로 옆 새로 지은 건물에서 이뤄진다. 군항제 기간에는 일시 개방할 때도 있지만 평소엔 문이 닫혀 있다. 시민들과 함께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우체국 정문에 붙여 놓은 이런저런 안내문도 떼내야 한다. 우편업무를 보지 않는다는 안내문, 폐쇄회로(CC)TV 설치 안내문 등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안내판들 때문에 정문은 어수선하다. 우체국의 고풍스러움을 훼손하고 감상을 방해한다.
진해우체국 정문 앞에 빨간 우체통 하나 세워 놓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직접 그리움을 부칠 수 있도록 말이다. 우체국 주변은 온통 벚나무다. 벚꽃이 분분히 날리는 화사한 봄날, 진해우체국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부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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