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벌써 2주일이 지났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제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웠던 계획은 모두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작심삼일의 이유는, 과도하고 비현실적인 목표와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과 전략 때문이라고 합니다. 늘 방해만 하는 세상 때문이라고도 하죠. 그래서 작심삼일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작은 목표를 세우고, 느리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던가요?
작심삼일의 진짜 이유는, 좋은 목표와 계획의 실천이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미래의 나 자신을 타인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현재의 나를 부정하기에,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우리에게, 타인들에게 거는 기대처럼 빡빡하고 가혹한 기대를 겁니다. 현재의 자신에게는 조금만 힘들어도 지나치게 너그러워지면서 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을 생각할 때와 남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는 다릅니다. 10년 뒤의 자기 모습을 생각하게 하고 뇌를 촬영해 보면, 대부분의 인간에게서는 타인을 생각하는 뇌의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반면 자신이 세운 계획을 잘 수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생각할 때 사용하는 뇌의 부위를 활성화시키죠.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더 잘 인식할수록, 계획의 실천 수준은 높아진다는 의미죠.
청소년기 이후의 정체성은 급변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성형수술도 내면을 크게 바꾸지 못 하죠. 타인인 척 연기하며 살아가기도 힘듭니다. 잠시 긴장을 늦추면 금방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죠. 지속적인 긴장의 유지는 건강에 해롭고, 사실 불가능합니다.
결국 대단히 발전 혹은 변신이 아니라 조금 나아진 사람이 되는 것을 새 출발의 목표로 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 철학, 윤리, 정치적 신념 등의 핵심에 ‘조금 더’ 다가가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가장 현실적이죠. 자신의 신앙, 철학 등의 좋은 점들을 잘 지키면서 조금씩 변화하려 노력하는 ‘초미시적 진보주의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내가 아니라 좀 더 좋은 내가 되기 위해서 말이죠.
기적, 변신, 표상의 약속은 대부분의 경우 사기입니다. 그런 것을 약속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를 속이는 짓도 하지 말아야 하죠. 아주 작은 변화도 무지하게 힘듭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기에 곧 익숙해지고, 필요한 규칙과 패턴을 만듭니다. 때론 넘어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하지만 한번 생긴 관성은 잘 사라지지 않죠.
오늘 소개하는 ‘출발’을 부른 김동률도 나지막이 동의해 줍니다. 때로는 넘어져도, 가끔은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자고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어깨를 쫙 펴고, 다시 새롭게 출발합시다. 보장된 것은 없고, 득과 실은 늘 공존합니다. 하지만 긍정 쪽에 한 표 던진다고 손해 보는 경우는 거의 없죠.
제 어머니께선 늘 말씀하셨습니다. “못 먹어도 고야! 그리고 내가 지면 무조건 삼세판이야∼!” 새로운 출발이지만, 삶이라는 게임의 규칙은 늘 같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태도,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인내하며 조금씩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작심삼일일 수 있지만, 그래도 기대됩니다. 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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