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감정선과 내밀한 호흡, 강렬하게 뿜어내는 에너지.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47)다.
눈송이가 나풀나풀 그림처럼 내려앉던 13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마담’ 역을 맡은 연극 ‘하녀들’이 공연 중인 이곳은 연희단거리패가 지난해 창단 30주년을 맞아 만든 극장이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통해 무대를 만났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꿈꾸는 것만큼 글재주가 없더라고요. 한데 연기를 하니까 내 몸짓과 대사에 따라 관객이 울고 웃는 거예요. 진짜 재미있었어요.”
이윤택 연출가가 배우를 훈련하기 위해 1994년 만든 우리극연구소 1기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연기를 할수록 연극은 심연에 뭔가가 있다는 걸 느꼈단다. “꼭 해 볼 만한 일이다”는 확신이 왔다. 그런데 3기생을 가르치면서 극심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가르친 대로 연기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게 돼 엄청난 압박감에 짓눌렸던 것.
“배우로서 영혼이 증발된 것 같았어요. 기쁨을 줬던 연기가 구속으로 여겨지자 더 이상 연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모든 걸 잃었다며 절망하던 그에게 선배들은 말했다. 가르치는 것과 연기하는 것에 대해 미숙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고민을 거듭하다 깨달았어요. 완벽함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구나. 부족하더라도 연기하고 가르치는 과정, 그 자체가 다 의미 있는 행위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죠.”
연극계에서 그는 ‘보석 같은 배우’로 불린다. 열혈 팬이 많고, 팬 카페도 있다. 그는 “30대까지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마흔을 넘기면서 가진 능력 이상으로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다”며 수줍어했다.
2015년부터는 연출가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가 연출한 ‘갈매기’는 과감한 생략과 압축, 강조를 통해 주제를 또렷이 부각시켜 젊고 감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 게릴라극장에서 다시 공연되고 있다.
“연출을 해보니 내 시야가 참 좁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더 철저하고, 더 집요하게 해야겠다고 느꼈죠. 음악, 미장센 등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어요.”
연기하고, 연출하고, 극단 대표로 서울과 밀양연극촌을 오가며 크고 작은 살림을 다 챙기는 그의 일정은 눈 돌릴 틈 없이 빡빡하다. 원로 연극인도 극진히 모신다. 그는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 피곤해도 금방 회복된다”며 웃었다.
연극은 그를 늘 깨어 있게 만든다고 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배우와 관객의 호흡, 공기의 흐름 등 똑같은 날은 절대 없어요. 연극은 나와 다른 세계, 나와 다른 이들을 매일매일 새롭게 연결해 줘요.”
이런 느낌을 받으며 하루하루 사는 게 좋은 삶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연극에 격(格)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런 극단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는 말도 듣고 싶고요. 공연을 본 관객에게서 ‘좋았다’는 말을 듣는 연출가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아, 희망 사항이 너무 많은가요?”(웃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