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70년대에는 한국에 ‘항공우주’ 이런 건 꿈도 꿀 수 없었어요. 그래도 ‘신기전(神機箭)’ 같은 로켓도 쏴 올렸던 우리 민족인데, 희망을 가지고 제 고막 걸고 덤벼봤죠. 하하.”
국내 최초 액체추진과학로켓(KSR-3) 개발을 주도한 로켓 전문가, 세계 13번째 우주기지인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건설 초석을 다진 항공우주 전문가, 조선시대 신기전을 복원한 화포 전문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원장을 지낸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교수(66)를 수식하는 말은 셀 수 없이 많다. 새해 ‘거북선 복원’에 도전하고 나선 그를 최근 대전의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967년 6월 10일 오후 3시 45분경. 로켓 2차 분사실험 중 점화와 동시에 (실험자의) 30cm 앞에서 폭발. 현재 왼쪽 귀는 안 들림.’
미국과 옛 소련의 우주 경쟁을 보며 로켓 전문가를 꿈꿨다는 채 교수가 고교 1학년 당시 노트에 기록한 로켓 실험일지 중 일부다. 당시 사고로 고막이 파열돼 그는 지금도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겁먹고 꿈을 접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다친 것보다는 살아서 기뻤어요. 앞으로 이 길만 걸으라는 신의 계시라는 생각도 했고….”
채 교수는 이후 로켓 외길만 걸었다. 그는 KSR-3 개발을 주도하고 항우연 원장 재직(2002∼2005년) 당시에는 전국을 다니며 로켓을 쏘아 올릴 ‘명당’을 찾아다녔다. 과학과 역사의 ‘다리 놓기’를 위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선 병기인 신기전의 존재를 발견하고 로켓과 원리가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 1975년 역사학회에 소개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2총통(銃筒), 4전총통(箭銃筒) 등 조선시대 화포를 복원해 시연에도 성공했다. 앞서 그가 소개한 신기전도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복원해 시연했다.
청소년 대상 강연에 나서는 등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는 그의 계획은 무엇일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진짜 거북선’ 복원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가장 무서워했던 게 거북선이에요. 하지만 지금 그런 위용을 보여주는 거북선이 없습니다.”
채 교수는 65분의 1 크기로 직접 만든 거북선 모형을 공개했다. 화포 전문가답게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거북선에 실린 화포 19개의 위치와 기능을 설명한다. 그는 “영화 ‘명량’의 묘사와 달리 왜선을 한 번에 침몰시킬 병기는 전면부의 천자총통 두 개뿐이지만, 적 지휘선 6∼10m까지 접근해 격침시키며 지휘 체계를 무너뜨리는 거북선은 존재만으로도 공포였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과 중국과의 갈등 등으로 한류 침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채 교수는 이런 해법도 제시했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던, 움직이고 화포 쏘는 진짜 거북선 떴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지친 국민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거북선은 미군부대(미 육군 837 수송대대) 마크에도 나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해요. 세계 곳곳에서도 많이 보러 오겠죠. 이게 진짜 한류인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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