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훈]화가 김병종의 순애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중진 동양화가인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와 화려한 문체의 소설가 정미경 작가는 금실 좋은 잉꼬부부였다. 일곱 살 차인 둘은 쏙 빼닮았다. 중앙일보 신춘문예(희곡 부문)에 뽑힌 문재(文才)와 이때껏 건강검진을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것까지…. 김 교수가 평생의 반려였던 아내와 18일 새벽 이별했다.

 ▷고인은 마산 출생으로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1978년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한 뒤에도 혼자 책 읽고 글쓰기에 빠져 살았다. 대학 재학 중 학내 문학상의 중편 단편 희곡 분야를 휩쓸었다. 트렌디하고 도회적인 감각의 빼어난 글 솜씨로 이화 백주년 기념문학상(1982년)과 오늘의작가상(2002년), 이상문학상(2006년)을 수상했다.

 ▷둘의 인연은 고교생 잡지인 ‘대학입시’가 맺어줬다. 이 잡지에서 각 대학을 소개하는 기획 연재를 했다. 먼저 김 교수가 서울대 편을 썼고, 그 다음 호에 고인이 이화여대 편을 썼다. 그 글을 보고 김 교수가 팬레터를 보낸 게 연애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편지만 6개월 넘게 주고받았다. 고인이 대학을 마치자마자 둘은 결혼했다.

 ▷꼭 한 달 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는 “남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겠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고인 뜻대로 과천 집 서재에서 둘은 함께 지냈다. 결혼 후 30여 년간 아침이면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두 시간 넘게 문학과 예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둘은 ‘예술적 동지’였다. 고인은 한 번도 작가 티를 내지 않고 김병종의 작품을 관리하고 일상을 챙겨준 매니저이자 어머니였다. 김병종은 “아내는 눈을 감으면서도 나를 걱정했다”고 했다. 고인은 ‘유아(幼兒)성’과 ‘예술에 대한 열정’ 때문에 더욱 그를 사랑했다. 김병종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내와의 교류의 진폭이 하루아침에 끊어져 정신적 공황에 빠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느닷없이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을 언어로 포착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꿈”이라고 고인은 생전에 말하곤 했다. 창작에 대한 목마름을 간절하게 표현했던 고인.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김병종#정미경#예술적 동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