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이찬재 씨(76) 모습이다. 그런 그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패드다. 그의 하루 일과는 아이패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자신이 전날 올린 그림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씨는 직접 그린 수채화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화가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독수리 타법으로 한 자 한 자 키보드를 눌러 ‘drawing’이라는 해시태그(#)도 직접 단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이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18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SNS 스타’다.
한때 젊은이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이제 세대를 아우르는 ‘자기표현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기존 중장년층의 SNS 사용이 폐쇄형 SNS(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와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개방형 SNS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팔로어 18만 명… 인스타그램 스타된 70대 할아버지
SNS가 6070세대의 일상을 파고들면서 6070 ‘SNS 스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팔로어가 18만 명에 달하고, 올리는 사진마다 ‘좋아요’ 수가 수천 개에 이르는 이 씨가 대표적이다. 이 씨는 손자와 손녀를 위해 매일 한 장씩 직접 그린 수채화를 인스타그램에 올려 큰 관심을 받고 있는 SNS 스타. 영국 방송 BBC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씨는 자신을 ‘인터넷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날로그 할아버지’라고 소개한다. 두려움,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일상의 편안함이 깨지는 것. 인스타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씨를 찾아온 감정이다. “단순한 생활이 저는 늘 좋습니다. 스마트폰도 그저 전화 받고 거는 데만 썼죠. 인터넷이 뭔지도 몰랐어요.”
스마트폰으로 전화와 문자만 겨우 이용하던 이 씨의 삶에 인스타그램이 찾아온 계기는 자녀와의 ‘이별’이었다. 1981년 이민을 와 브라질에서 함께 살던 아들 지별 씨(46)의 가족이 2011년 미국 뉴욕으로 떠났고 딸 미루 씨(42) 가족마저 2014년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던 두 외손자를 차로 데려다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이 씨에게 딸과 아이들의 한국행은 공허한 일상의 시작이었다.
외로워하는 아버지가 눈에 밟혔던 지별 씨는 2015년 친손자 아로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했다.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던 아버지가 제자들과의 소풍이나 수학여행 풍경을 종종 그림으로 남기시던 기억이 난 터였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미래 어느 날에도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그림으로 만나고, 사랑하게 될 텐데요. 이보다 더 좋은 소통이 어디 있겠어요?” 아들의 말에 이 씨의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인스타그램이 손에 익기까지는 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지별 씨는 눈이 침침한 아버지를 위해 브라질로 아이패드를 보내주고, 모르는 게 있으면 꺼내볼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 사용 매뉴얼을 노트에 정리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힘들어 포기하려다가도 아들의 정성에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은 옆에서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게 막으며 조금의 짜증도 없이 내게 인터넷 활용 방법을 가르쳐줬어요. 그런 아들에게 실망을 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별 씨는 페이스북에 아버지가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게 된 사연을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다. 이 영상이 48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100여 명이던 이 씨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하루아침에 20만 명이 됐다. “하루라도 인스타그램을 손에서 놓으면 둔해지기 때문에 ‘1일 1작품’을 원칙으로 한다”는 이 씨의 인스타그램에는 2015년 말부터 현재까지 450장이 넘는 그림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은 나 자신의 발견이자 아들의 발견입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인생 2막’ 연 ‘남포동 닉 우스터’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SNS 이용추이 및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50대는 2014년 대비 SNS 하루 평균 이용시간이 46분에서 58분으로 12분 증가했다. 20대 다음으로 평균 이용시간이 많이 늘었다. 60∼70세의 SNS 이용자 비율도 2014년 5.1%에서 지난해 10.9%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러다보니 노년층의 관심을 끄는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부산 남포동의 닉 우스터’라 불리는 재단사 여용기 씨(64)도 인스타그램으로 ‘인생 2막’을 연 SNS 스타다.
닉 우스터는 ‘세상에서 제일 옷 잘 입는 아저씨’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패션 디렉터이다. 지금은 닉 우스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불과 4년 전만 해도 여 씨는 주차장과 공사장을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신세였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17세에 남포동 양복집 ‘덕성나사’에서 재단사 일을 시작한 여 씨는 기성복의 등장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20여 년간 한 우물만 팠기에 상실감은 더 컸다. 맞춤양복의 가치를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했지만 변해가는 세상을 붙잡고 있을 방법은 없었다.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전 재산을 잃었어요. 주차요원부터 일용직 노동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여 씨에게 줄자를 다시 잡을 기회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둘째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양복을 맞출 천을 사기 위해 부산 양복가게 ‘매료’에 들렀다가, 직접 아들의 양복 재단을 하게 된 것이다. 여 씨의 남다른 패션 감각과 재단 실력을 알아본 젊은 대표는 여 씨에게 재단사로 일해 줄 것을 제안했다. 지난해 6월 매료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부산 중구에 양복점 ‘에르디토’를 차렸고, 여 씨가 합류했다.
여 씨에게 SNS는 노년에 찾아온 선물이었다. 에르디토 동료들이 인스타그램에 여 씨가 만든 양복과, 여 씨가 양복을 착용한 사진을 올려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평생 양복만 만들다가 40세에 접어든 이후 10여 년간 막노동판과 주차장을 전전하던 여 씨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였다.
여 씨가 SNS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데에는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20, 30대 동료들은 여 씨가 만든 양복을 직접 입은 사진, 일상 사진 등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을 옆에서 도왔다.
붉은색 꽃무늬 스카프에 회색 카디건, 청바지에 갈색 가죽 구두, 금장 단추가 달린 분홍색 정장. 20대도 소화하기 힘든 패션 스타일을 매일 선보이는 여 씨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어가 4만3000여 명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면서 부산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SNS에는 ‘오늘 버스에서 뵀는데 사진 찍자고 못 한 것이 너무 아쉬워요’ ‘선생님만큼 분홍색 정장이 잘 어울리는 사람을 못 봤어요’ 등의 댓글이 달린다.
여 씨는 인스타그램이 있었기에 재단사 일도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TV는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한곳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에 봐야 하죠. 스마트폰을 통한 SNS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어서 젊은 사람들과 항상 소통할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이 없었다면 젊은 친구들이 맞춤정장의 멋스러움을 지금만큼 잘 알 수 있었을까요?”
전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SNS 배우기를 꺼리는 60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물건을 한 번은 써보고 죽어야지, 안 써보고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그 한 번의 시도로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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