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가 바뀌면 ‘새해 결심’이라고 몇 가지 정도는 일기장이나 다이어리에 적게 된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올해 첫 일기를 들춰보니 ‘일기를 더 자주 쓰고 휴대전화 보는 시간 줄이고, 더 많이 읽고 쓰는 그런 한 해를 만들어야지’라고 써놓았다. 사전적 의미대로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라 나는 정말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있다. 그날그날의 푸념과 반성이 빠질 수 없어 다시 읽으면 유치하고 감상적으로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일기가 아니라면 어디에다 그런 문장들을 끼적거려 놓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카프카나 존 치버의 일기처럼 훗날 출판이 되는 일기도 있는데 그런 건 역시 대가들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고백소설의 범주 안에 편지나 일기 형식으로 쓴 소설들이 있다. 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가 지금은 가장 먼저 떠오른다. 80대에 이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딸에게 쓴 일기 형식의 소설. 제목처럼 오로지 자신의 몸에 관한 일기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자신의 몸을 통해 겪었던 2차 성징, 구토, 불면증, 건망증, 노안, 전립샘 비대증, 치매….
그러니까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한 세세한 일화들. 기록(記錄)의 의미는 읽는 사람의 생에 대한 갈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닐까. 언젠가 일기 형식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키지 않고 기록을 남기지도 않으니 순간순간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만다.
지금 쓰고 있는 검은색 일기장 앞에는 WRITE라고 새겨져 있다. 줄이 쳐져 있고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 미색 종이이며 잉크를 잘 흡수하고 크기나 색이 두드러지지 않아 책들 사이에 대충 세워 놓아도 가족들 눈에 띌 염려도 적다. 먼 데서 지인이 보내준 데다 내가 원하는 일기장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 애착이 간다.
조카들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는데 최근에 5학년짜리 조카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제목으로 쓴 일기를 읽게 되었다. 아직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모르지만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책에서 읽은 대로 ‘모든 것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꿈을 찾는 그날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자고 말이다. 초등학생의 그런 내면의 일기를 교정봐 주고 있자면 나 또한 무언가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인다. 수수한 공책 같은 걸 머리맡에 두고 있으면 불현듯 써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처럼.
사람은 나이가 드는 만큼 덜 기대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없음의 감정’은 보다 커진다고. 두려운 말이다. 올해 일기장에는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점들을 더 적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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