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도 부여. 백마강을 배경으로 한 부소산과 낙화암은 부여의 절경 가운데 하나다. 부소산에 오르는 길, 그 고즈넉한 초입에 눈에 확 들어오는 건물이 하나 있다. 옛 국립부여박물관이다.
설계자는 건축가 김수근. 그는 1965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 건물을 설계했다. 한옥을 떠올리게 하는 지붕, 서까래 분위기의 콘크리트 골조, 지붕 위에 둥그렇게 솟아오른 천창…. 외관은 강렬하고 내부 공간은 극적이다. 한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한옥 이미지가 좀 과장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독특하다. 당시로서는 새롭고 파격적인 건축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1967년 건물이 준공되고 그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왜색 논란에 휩싸였다. 건물의 지붕이나 정문 등이 일본 전통건축 양식과 비슷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김수근의 선배 건축가인 김중업도 “명백한 일본식”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이에 대해 김수근은 “백제의 양식도, 일본 신사의 양식도 아니라 김수근만의 양식”이라고 반박했다.
그해 논란은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았고 부여박물관은 1970년 개관했다. 하지만 정문은 철거되었다. 일본 신사의 입구 도리이(鳥居)와 흡사해 왜색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과연 일본식인가, 아닌가. 왜색 비판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왜색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면도 있다. 사실, 쉽지 않은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색 여부가 아니라 전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 건축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이에 대한 고민이 왜색 논란으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근은 1979년 국립청주박물관을 설계했다. 청주박물관 건물은 전통 건축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여 년 전 왜색 논란이 청주박물관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전기가 되었을 것이다. “왜색 논란이 있었기에 훗날의 김수근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1993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이후 옛 부여박물관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건물로 쓰이다 지금은 부여군문화재사업소와 백제공예문화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 부여박물관은 한국 건축에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50년 전 왜색 논란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길 수 있도록 공간 활용을 좀 더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