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염천교 구두거리와 서울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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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서울역 인근 염천교 구두거리.
1925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서울역 인근 염천교 구두거리.
 대학에 합격하거나 취직을 하면 정장 한 벌, 구두 한 켤레 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양화점 양복점 양장점이라는 말이 익숙했던 1960∼80년대. 살림이 좀 어려워도 말끔한 구두 한 켤레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 구두는 품격과 낭만의 상징이었다.

 서울역 바로 옆 염천교에 가면 ‘염천교 수제화거리, 모단뽀이 구두의 고향’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거리라고 하기엔 규모가 다소 작지만 100여 곳의 구두 가게와 공장이 모여 있다. 남성화 여성화 스포츠화에 살사화 라틴화 스윙화 같은 댄스화도 많다. 발에 맞게 직접 구두를 맞추고, 수선도 하고 구두용품도 판다.

 염천교 구두거리는 1925년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이 생기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경성역은 사람들로 늘 붐볐고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경성역에는 화물창고가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갈 가죽이 흘러나왔고, 그 가죽을 활용한 피혁 구두 노점상이 바로 옆 염천교 일대에 생겨났다. 구두의 수요는 점점 늘어났다. 경성역에 들고 나는 멋쟁이들, 이른바 ‘모단 뽀이’들이 염천교로 몰렸다. 1930년대 구두는 샌들과 함께 유행을 탔고 유행의 진원지는 염천교였다.

 1950년대 들어 미군들의 중고 군화를 이용해 구두를 만드는 집이 늘어났다. 염천교에 본격적인 구두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1970년대는 염천교의 전성기였다. 염천교의 구두는 질이 좋으면서도 값이 저렴해 인기가 높았다. 자연스레 전국 각지로 공급되었다.

 하지만 대형 브랜드가 득세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염천교 구두거리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구두거리는 서울역 역세권 개발사업으로 한때 철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 위기는 극복했지만 이제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염천교 구두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수제화 거리축제가 열렸고 구두 매장을 운치 있게 꾸민 카페도 생겼다. 얼마 전엔 구두 박물관까지 문을 열었다. 박물관 이름은 ‘오 슈(Oh, Shoe)’. 낭만적이다.

 염천교 위에 ‘염천교 수제화거리 100년을 향하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5년, 그때 우리는 염천교 구두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90년 넘게 서울역과 함께해 온 염천교 구두. 옛 서울역은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그곳에 염천교 구두를 기억하는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염천교 구두거리#서울역#구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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