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즐기고 정성 들여 화분을 키우는 올리버. 똑똑하고 활발하지만 관계와 애정에 대해 냉소적인 클레어. 이들은 집사처럼 인간을 도와주고 감정을 지닌 로봇인 헬퍼봇이다. 둘 다 오래돼 주인에게 버려진 후 홀로 아파트에 산다.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낡고 버려진 존재를 통해 생의 유한함과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감미로운 음악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 배우들의 열연으로 평일에도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계획한 일정에 따라 살아가는 올리버는 충전기가 고장 나 도움을 요청하는 클레어의 방문에 당황한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올리버는 옛 주인을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떠나는 모험에 나선다.
로봇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인간은 기계보다 차갑다. 오래된 건 가차 없이 버리고,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서로를 지겨워한다. 작품은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남겨놓았다.
정문성(올리버 역)과 전미도(클레어 역)는 다소 뻣뻣한 로봇의 몸짓을 실감나게 연기해 몰입도를 높였다. 턴테이블과 화분, 실 전화기 등 아날로그 소품은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 따뜻함을 선사한다.
몸 여기저기가 점점 고장 나고, 한정된 시간을 마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인간과 별 다름이 없다. 예정된 이별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인생의 의미를 찬찬히 돌아보게 만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인터미션 없이 공연하는 110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오랜 생명력을 지닐 작고 단단한 뮤지컬이 또 하나 탄생했다. 3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4만∼6만 원. 02-766-7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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