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력파 검출 발표 전까지 최근 물리학계의 최대 성과는 역시 2012년 실험으로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이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딴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 초기 다른 기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해 입자들이 원자를 형성하도록 했다. 우주를 지금처럼 만든 입자인 셈이다. 가설로만 존재하다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존재를 입증했다.
“원래 내가 생각한 별명은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였는데, 편집자가 언어순화를 위해 damn을 뺐고…”(리언 레더먼)
힉스 입자에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은 ‘신의 입자’(God Particle)라는 별명을 붙인 게 199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이다. 저자인 레더먼은 미국 페르미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뮤온 중성미자’ 관련 연구로 1988년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실험물리학자다. “신의 입자라는 별명은 떼돈을 벌고 싶어 하는 출판사의 욕망에 제가 동조한 거지요.”(2001년 노벨 재단과 레더먼의 인터뷰에서)
책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뉴턴, 패러데이, 러더퍼드를 거쳐 20세기 양자역학과 힉스 입자까지 2600년에 걸친 물리학의 역사를 풀어낸다.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기도 한 괴짜 레더먼과 베테랑 과학저널리스트인 딕 테레시의 입심이 만만찮다. “반양성자는 물고기처럼 양식할 수 없고 철물점에서 팔지도 않는다”처럼 위트 있는 문장이 ‘입자 가속기는 어떻게 작동할까’ 하는 주제가 가져다주는 두통을 덜어주고, “빔의 지름은 콜라를 마시는 스트로 굵기에서 머리카락 굵기로 가늘어진다”는 표현에서 보이듯 가능하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쓰였다.
“레더먼: …쿼크와 렙톤은 물질을 이루고 광자와 W, Z입자, 중력자는 힘을 매개합니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에서는 힘과 입자의 구별이 확실치 않아요. 둘 다 입자로 간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데모크리토스: 어쩐지 내 이론이 더 낫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 이론은 복잡하고 자네는 단순함을 추구한다더니, 결국 내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잖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저자의 가상 대화 형식을 빌린 부분이다. 저자도 ‘표준이론’이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 우주의 근본을 탐구한 철학자들과 현대물리학의 유사점이 놀랍다.
저자가 이론을 검증해 생명을 불어넣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보다 덜 알려지는 경향이 있는 실험물리학자의 비애를 털어놓는 부분은 웃음이 난다. 돼지(실험물리학자)가 애써 찾은 송로버섯(새로운 발견)은 농부(이론물리학자)의 것이 된다는 것.
“이론물리학자는 해가 중천에 떠야 연구실에 나타나고…, 실험물리학자들은 늦게 출근하는 법이 없다. 비결은 간단하다. 아예 집에 가지 않으니까!” 그들은 또 실험을 위해 10t짜리 기중기가 머리 위를 오락가락하는 곳이나 방사능 위험 지역 가까이에서 일한다고.
한국 과학자들도 교양서를 심심찮게 내지만 이 책처럼 두툼하고 난해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책장이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책은 별로 많지 않다. KAIST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친 역자의 번역도 흠잡을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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