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I.O.I(Image of Issues)] 야생동물이 무섭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11시 49분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 셋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평범함 ‘엄마 기자’입니다. 아이 셋에 직장, 게다가 기자라니. 전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험난한(?) 취재현장을 누비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고, 늘 ‘이것이 내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과에 임한다는 점에서 여느 엄마들과 같다 하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취재현장에서 겪고 느낀 바를 엄마의 시각, 엄마의 마음에서 풀어나가 보고자 합니다. 부족한 솜씨의 글이나마 찾아와 읽고 공감해주실 분들께 미리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저는 현재 환경과 보육 문제를 취재하는 기자입니다. 환경이라, 문자 그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뜻하는 말이죠. 지난해에는 미세먼지와 가습기 살균제라는 우리를 둘러싼 지극히 평범한 환경이 우리를 아프게 했습니다. 올해는 맑은 하늘, 깨끗한 물, 수려한 경관처럼 우리를 기쁘게 하는 환경이 많았으면 좋겠는데요. 첫 시간인 오늘은 동물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합니다.

동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죠. 아직 모두 영유아인 제 아이들도 무척 좋아합니다. 언젠가 국내여행 도중 ‘아기동물목장’이라는 곳을 방문했는데, 일반 축사만한 공간에 아기동물들을 이것저것 풀어놓은 다소 조악한 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기동물목장 가자”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좋아하더군요.

최근 이 동물들이 많이 아픕니다. 바로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이야기입니다. 현재 이 두 질병에 걸린 가금류와 가축류는 모두 살처분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시작된 AI는 역대 최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벌써 3000만 마리가 넘는 닭을 하늘로 떠나보낸 상황입니다. 당연히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발이 일고 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전염성 등 위험을 고려하면 최선의 방책이라는 입장입니다. 닭이나 소가 살아있는 동안은 어찌되었든 주변에 전파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두 질병에 관한 관리는 모두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라 제 관할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똥이 야생동물로 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모든 야생동물에 관한 보호와 관리 책임은 환경부에 있거든요.

최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매달 10건 이내에 불과하던 조류 등 폐사체 신고건수가 한두 달 새 수백 건으로 껑충 뛰었답니다. 이 폐사체란 직박구리, 비둘기 같은 텃새나 떼까마귀 같은 철새, 일부 너구리 같은 포유류의 사체인데요. 그럼 AI나 다른 바이러스가 야생동물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걸까요? 사실 지난달 총 신고된 폐사체 689건 가운데 AI 바이러스가 발견된 건 새 5마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럼 나머지 684건은 뭘까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죽어서 신고된 경우입니다. 사실 이렇게 대폭 늘어난 폐사체 건수에 대해 환경부는 단순한 신고의 증가, 즉 ‘AI 등으로 인해 관심과 공포가 늘면서 신고의 수가 증가한 것’이 큰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길가에 비둘기가 죽어있어도 ‘에이, 재수 없게…’하고 지나쳤다면 이제는 ‘혹시 AI?’하며 신고한다는 것이죠.

그래도 여전히 못 미더운 분들이 계실 겁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릴게요. 모든 개체는 종에 따라 질병에 대한 감수성이 다릅니다. 닭은 AI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치사율도 높습니다. 걸리면 거의 죽는 겁니다. 고니나 오리 같이 물에서 생활하는 물새류도 비교적 AI 감수성이 높은 편입니다. 야생조류의 경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닭만큼 많이 죽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야생조류 폐사체 다수가 바로 오리와 고니였습니다. 얼마 전 서울 성동구에서 발견된 뿔논병아리 역시 물새류입니다. 종종 육식을 하는 부엉이, 매 가운데 AI 감염 폐사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들은 감염조류를 먹고 옮은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비둘기나 참새, 직박구리 같은 텃새들의 AI 감수성은 매우 낮습니다. 걸리지도 않고 잘 옮기지도 않는단 뜻입니다. 이번 AI 첫 발견 이후 지금까지 총 45건의 야생조류 폐사체, 분변 발견이 있었지만 이들은 단 한 마리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환경부는 해외 연구결과를 봐도 이들 조류의 감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감수성과 치사율이 높은 종일수록 외려 전염력은 떨어지기도 합니다. 빨리 죽기 때문에 전파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거죠. 엊그제 이야기를 들으니 제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원앙 101마리를 살처분한 것도 이 아이들이 AI 감염 시 빨리 죽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감염된 황새 두 마리는 살처분 전에 폐사했고요.

각설하고, 이런 사실에도 시민들의 불안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야생조류에 대한 방역과 예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야생조류에 대한 공포로 새들을 못 오게 하거나 죽게 하는 약을 치는 사람도 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폐사체 분석을 해보니 농약과 같은 독극물 성분이 많이 검출되었던 겁니다.

환경부는 AI 사태로 생태계 복원의 증거이자 고마운 손님인 철새나 여타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이 괜한 오해를 살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구제역 사태가 터지자 사람들의 관심이 대번에 멧돼지와 고라니로 쏠렸듯이 말입니다. 아무래도 통제 하에 있는 가축보다는 통제 밖에서 어떠한 바이러스와 세균을 몰고 다닐지 모를 야생동물이 무섭긴 하겠죠. 하지만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멧돼지와 고라니가 구제역이 걸린 사례가 없다는데 무턱대고 무서워 할 일은 아닙니다. 마치 독감이 유행한다고 잠재적 독감 전파자인 친구를 멀리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며칠 전 함께 저녁뉴스를 시청하던 첫째가 AI 뉴스를 보며 “엄마, 닭들이 아파?”하고 묻기에 “응, 닭들이 심한 감기에 걸려서 많이 죽었대”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어떡해~”하며 예의 그 걱정하는 얼굴로 한동안 뉴스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더군요. 닭들을 걱정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예뻤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자체와 지방 환경청 공무원들이 네댓 명씩 팀을 이뤄 주요 철새도래지 등을 예찰하고 있습니다. 만일의 위험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한 공포로 말미암아 가금류 방역에 충원되어야 할 인력들이 보다 덜 중한 쪽으로 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어쨌든 하루빨리 AI, 구제역 사태가 진정돼 많은 야생동물들이 엉뚱한 누명을 벗고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길 빌어봅니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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