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兪) 노인이 질병으로 강화(江華) 윤여화(尹汝化)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70세였고 자식은 없었다. 나는 빈 땅을 주어 그를 묻게 하고 묘지(墓誌)도 지었는데, 자(字)는 있지만 이름도 족보도 호적도 없어 마음이 아팠다.
노인은 홀몸으로 떠돌다 중년에 윤여화의 집에 얹혀산 지 30년이 되었다. 다른 재주는 없고 날마다 짚신 삼는 일만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가 팔지 못하고 윤여화가 팔아서 쌀을 사다 주었다. 그는 사람들이 빈손으로 와서 신을 달라고 해도 바로 내주었고, 값을 오랫동안 안 주어도 가서 달라고 하지 않았으므로 때로는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걸음도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내 집과 윤여화의 집이 서로 빤히 보일 정도로 가까웠지만 나는 끝내 늙은이의 얼굴을 알지 못하였다.
이건창(李建昌·1852∼1898) 선생의 ‘유수묘지명(兪수墓誌銘)’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평범한 이웃 노인의 죽음 앞에 선생은 선선히 땅을 내어 주고 글까지 지어 줍니다. 그런데 내용이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옛날 성현들은 종신토록 한 가지 일도 세상에 행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학업은 다 세상에 행해지고 있다. 노인도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걸음도 길에 나다니지 않았지만 그가 한 일 또한 세상에 행해지고 있다. 비록 일은 다르지만 그토록 부지런히 하고도 자기에게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이니 또한 슬프다.
그러나 성현은 세상에 도를 행하지 못하고 세상도 그 도를 쓰지 않았는데 도리어 비방과 환난에 걸려 두려워하고 편안하지 못하였다. 노인은 세상에 도를 행할 뜻이 없었지만 이웃 사람들이 신을 신고 값을 치렀으니 제 힘으로 먹고 늙어 죽도록 걱정이 없었다.
그러므로 노인이 평범한 사람이건 아니건 아무런 유감이 없었을 것이라며 선생은 아래의 명(銘)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진정으로 위대한 삶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오곡이 풍성한 것을 백성들은 보배로 여기나니(五穀봉봉民所寶)/알맹이는 거두어 먹고 짚은 버린다네(斂精食實委枯槁)/오직 노인은 이 짚으로 일생을 마쳤으니(惟수得之以終老)/살아서는 신을 삼고 죽어서는 거적에 싸여 갔다네(生也爲구葬也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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