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아니 중요했던 말들입니다. 오늘날 이들은 모두 심각한 위기에 있습니다. 이들을 거론하는 데 과거형을 써야 할 만큼 말입니다. 새해 벽두의 출판계 소식이 국내 대형 도서도매상의 부도 사건이었다는 것도 이를 증명합니다. 지금도 서점과 출판계에 그 부정적 여파가 절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의 위기는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참 전의 일입니다. 20여 년 전에 필자도 이미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책은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 서둘러 책의 종언을 선포한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디지털 코드들은 자모음 코드들에 대항하여 곧 항복을 받아낼 태세이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앞으로 50년을 지배할 기술은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지만, 100년이 넘으면 기술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문화적 변동을 예측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을 예측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책의 소멸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예측되기 시작했지만, 책이 언제 인류 문화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인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예측의 도박을 한다면, 앞으로 50년 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인류에게 지식 생산과 습득의 수단으로서 ‘호흡이 긴 문자문화’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호흡 짧은 정보의 난무에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쉽게 무시할 수 없습니다. 상상력과 통찰력이라는 점에서도 책과 독서는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차원도 있습니다. 독서는 ‘윤리적 훈련’에 도움을 줍니다. 윤리적 필요는 ‘하기 싫은 것을 애써 하는 것’과 연관 있기 때문입니다. TV 시청과 스마트폰 게임은 하지 말라고 해도 하지만, 책 읽기는 애써 해야 합니다. 이런 윤리적 수련은 일상적 삶의 내공을 키워줍니다.
앞서 50년이라고 한 것은 종이책 기준입니다. 전자책(e-book)은 그보다 더 오래갈 것입니다. 100년은 갈 것입니다. 그 이후는 모릅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전자책이 상용화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그 탄생과 함께 소멸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근본적으로 ‘독서 인구 소멸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이제 우리는 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책의 존재적 조건’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수천 년을 장수한 책의 수명이 50년 또는 100년밖에 안 남았다는 것은, 책이 죽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책은 문명적으로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말기 암 환자는 들어 둘 만한 소리를 많이 하는 법입니다. 머지않아 이별을 고해야 할 책이라는 환자는 보석 같은 말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그것을 경청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책의 죽음이 선고되었는데도 책을 쓰거나 읽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비웃음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겁니다. 이는 억지로 책의 목숨을 연장시키려는 것도, 서둘러 안락사시키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책이 바라는 건 사랑의 손길입니다. 책은 자신이 남길 마지막 말들을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사랑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책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독서라는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며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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