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생활은 직장인들의 퇴직 후 꿈이다. 25평 정도의 집, 잔디마당, 그리고 조그만 텃밭, 200평 정도면 충분하겠지. 냇가에서 고기 잡고, 음악 듣고, 가끔씩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고, 여행하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곤란했다.
어떤 일이든 그 시간만큼은 몰두할 수 있어야 하고 조그마한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여행도, 그림 그리기도 그 다음이어야 제대로일 것이다. 그래서 800여 평의 땅을 샀다. 이 땅에서 지난해 첫 농사를 시작했다. 우리 땅은 예전에 논이었던지라 완전 진흙이다. 먼저 토질 개선을 위해 마사토 40차를 받고, 옆집 아저씨에게 물어 계분 15t, 세 트럭분을 주문했다. 말이 세 트럭이지 금세 밭 한가운데에 작은 동산 세 개가 생겼다.
일은 고됐다. 하루 세 번 옷을 갈아입고, 세 번 샤워를 했다. 장비가 없어 오직 삽으로만 하려니 힘이 들었고, 이런 모습을 보는 아내는 속이 상했는지 잔소리를 해댔다. 계분 냄새는 정말 대단했다. 아내는 냄새에 예민해 정말 괴로워하면서 서울로 가겠다고 야단이었고, 내년엔 절대 계분은 뿌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일을 끝낸 저녁, 샤워를 한 뒤 집 앞 테이블에 앉아 별자리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하다 보면 정말 기분이 상쾌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2월 말이 되자 겨우내 조용했던 동네가 조금씩 분주해지기 시작하였다. 나도 뭔가 심어야 하는데 아는 게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이웃에 사는 전 이장님이 트랙터를 몰고 오셨다. 그분도 2만 평 이상 농사를 짓는데 우리가 걱정되어 바쁜 중에도 부인과 함께 도와주러 온 것이다. 그분은 트랙터로 밭을 갈아주고, 두렁을 만들어주고, 더덕 땅콩 도라지 곤드레 심는 법을 알려주면서 심어주셨다.
일단은 어떤 작물이 우리 토양에 맞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심었다. 고추, 고구마, 옥수수, 호박, 피망, 가지, 토마토, 부추, 열무, 우슬 등등. 아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계분 덕분인지 작물들이 너무 잘 자랐다.
고추는 세 집 김장김치를 하고 남을 만큼 자랐고, 방울토마토는 지인들이 수시로 한 바구니씩 따 가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열렸다. 피망, 가지, 호박도 너무나 튼실하게 자라서 다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땅콩은 땅속에서 조롱조롱 열매가 나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였다.
군에서 사업비를 지원받아 오미자도 300평 정도 심었는데 이놈이 속을 좀 썩였다. 관수시설을 제때 설치하지 못하다 보니 식재하려고 준비한 묘목이 말라버렸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조급해하지 말자.”
―이한일
※필자(61)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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