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십오 분만 기다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문학동네·2016년) 》
최근 눈 덮인 블루라군과 깎아지른 듯한 빙벽(氷壁), 바람에 나부끼는 실크커튼 모양의 오로라를 사진으로 봤다.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난 지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들이다. 눈길이 갔지만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찮게 “아이슬란드에는 ‘날씨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럼 십오 분만 기다려’라는 말이 있다”는 문장을 접한 순간 아이슬란드가 궁금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 곳곳을 여행한 뒤 만든 책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 담긴 글이었다. 하루키는 책에서 미국 보스턴 찰스 강변의 오솔길, 자신이 과거 소설을 쓰며 머물렀던 그리스의 한 시골 섬, 라오스의 메콩 강 등을 맛깔 나게 소개하고 있다.
여행 뒤 오래 남는 기억 중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 적잖다. 기자는 인도를 떠올리면 타지마할보다 아그라의 한 낡은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내려다본, 뿌연 먼지 속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던 거리 풍경이 더 잊혀지지 않는다. 캄보디아를 연상하면 앙코르와트보다 축축한 물기가 느껴지던 밤공기가 먼저 떠오른다. 늦은 저녁 오토바이 택시에 몸을 싣고 공항에서 시내로 질주할 때 얼굴에 닿던 그 감촉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하루키의 여행기에서 아이슬란드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한 현지인들의 지혜가 담긴 문장 한 줄에 현지를 찾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숨을 멎게 하는 압도적인 풍광이나 관광객의 필수 답사 코스로 여겨지는 관광지보다 궂은 날 한적한 시골 골목길에서 더 많은 감흥을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체하지 않고 올 여름휴가 계획에 아이슬란드를 추가했다. 아이슬란드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걸어보고 싶어져서다. 눈 덮인 온천과 커다란 빙하의 나라, 밤이면 휘황찬란한 오로라가 펼쳐지는 나라로 각인된 아이슬란드. 그 뒷골목 선술집의 퀴퀴한 맥주 냄새가 벌써 코끝을 간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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