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죄를 지었다”며 사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여기는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며 어깃장을 놓는다. 최순실 씨의 돌변한 행태다. 이를 지켜보던 환경미화원이 소리쳤다. “염병하네.”
‘염병(染病).’ 전염병이라는 뜻 외에 ‘장티푸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 장티푸스는 천연두, 콜레라 같은 전염병 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이 병이 한 번 돌았다 하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곤 했다. 그래서 전염병 하면 장티푸스가 떠올라 염병이 장티푸스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조항범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오늘날 염병은 흔하지도 않고, 또 걸리더라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염병을 이용한 욕이 언중의 입길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건 왜일까. 염병에 대한 혐오가 그만큼 컸다는 방증일 성싶다.
‘염병할’ ‘염병할 ×’이 많이 쓰인다. ‘염병할’은 그러니까 무서운 병을 이용해 매우 못마땅함을 나타낼 때 하는 욕이다. ‘염병할 ×’은 ‘염병을 앓을 ×’이라는 뜻. 더 지독한 욕도 있다. ‘염병에 땀을 못 낼 놈’이라는 속담이 그것. 땀을 내면 낫는 병으로 알려진 염병을 앓는 사람에게 땀도 못 내고 죽을 사람이라고 퍼붓는 셈이다.
‘50일 전 죽을 죄 졌다더니 첫 재판에서 혐의 모두 부인.’ 역시 최 씨 재판과 관련한 한 신문 제목이다. 한데 여기엔 두 가지 잘못이 보인다. 먼저 ‘죽을죄’는 붙여 써야 한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는 게 맞춤법의 원칙이지만 죽을죄는 ‘죽다’와 ‘죄’가 만나 ‘죽어 마땅한 큰 죄’를 가리키는 새로운 단어가 됐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 속 돌다리가 돌과 다리가 합해져 하나의 낱말이 됐듯이. 그러고 보니 죽다와 관련한 합성어도 많다. ‘죽을고(더는 어찌할 수 없게 된 어려운 처지나 지경)’ ‘죽을병’ ‘죽을상(거의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는 표정)’ ‘죽을힘’ 등이 있다.
두 번째는 ‘죄를 졌다’가 아니라 ‘죄를 지었다’로 써야 옳다. ‘죄를 저지르다’는 뜻의 동사 ‘짓다’는 ㅅ불규칙용언으로 ‘죽을죄를 지어/짓고/지었다’로 활용된다. 즉 ‘신세나 은혜를 입다’는 뜻의 규칙용언인 ‘지다’와 달리 ‘지어’와 ‘지었다’를 ‘져’, ‘졌다’로 줄여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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