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브람스가 가곡으로 만든 고린도전서의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만년의 브람스.
만년의 브람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 믿음, 소망, 사랑은 늘 함께 있을 것인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글입니다. 특정의 신앙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 아름다운 글은 늘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이 글을 가사로 만든 가곡도 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63세 때인 1896년에 쓴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중 마지막 네 번째 곡입니다. 이해, 브람스가 평생 사모했던 여성이자 스승 슈만의 부인이었던 클라라 슈만이 76세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클라라를 사랑한 나머지 ‘내 머리에 총을 쏘고 싶다’고까지 친구에게 고백했던 브람스였지만,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깊은 정신적 교류로 발전했고 브람스는 늘 자신의 작업 방향을 클라라와 서신으로 논의하곤 했습니다. 그런 클라라가 죽음의 자리에 들었음을 알았을 때, 브람스의 손끝에서 나온 것은 쓸쓸한 감상주의가 아니라 진지해서 장엄하기까지 한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오늘 2월 14일은 ‘사랑의 날’로 알려진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달콤한 사랑의 노래도 좋지만, 깊이 있게 사랑에 대해 성찰하는 이 노래도 한번 듣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니 상업적인 밸런타인데이는 버리고 안중근의 날로 기리자’는 목소리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만 100퍼센트 찬성의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안 의사에게 선고를 내린 주체는 일본 제국주의 법정이었고, 결국 이 선고일은 그들의 손에서 결정된 날짜이기 때문이죠. 안 의사 의거일(10월 26일)을 지금까지보다 더 의미 있게 지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사랑에는 여러 갈래가 있죠. 연인에 대한 사랑도, 은인에 대한 존경이 담긴 사랑도, 민족에 대한 안 의사의 사랑도 모두 귀한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랑의 말을 건네 본다면 그 의미가 클 듯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사도 바울#사랑#요하네스 브람스#네 개의 엄숙한 노래#밸런타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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