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재상이었던 오자서(伍子胥)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미 죽은 초(楚)나라 평왕(平王)의 묘를 파헤쳐 시신에 매질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사람을 보내어 그의 지나친 행동을 책망하자, 오자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이 멀어 이치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였노라”라고 말하며, 신포서에게 사죄의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
아무리 해야 할 일이 많더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억지로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더욱더 자신의 처지와 역량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일을 도모하다 보면 반드시 이치를 거스르는 무리수가 남발될 것이고 결국은 자멸의 길에 이르고 말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관직에서 물러나는 나이를 70세로 상정하였다. 일반적으로 70세까지 관직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이 나이에 이르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가도록 청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위의 글은 고려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김부식이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며 올린 글의 첫머리이다. 그는 70세가 조금 못 된 68세의 나이에 벼슬에서 물러났는데, 아마도 그즈음의 글인 듯하다. 모든 역량과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에 자신이 갈 수 없는 길이라면 걸음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김부식은 이 글에서 벼슬에서 떠나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서(禮書)에는 ‘치사(致仕)’라는 말이 있고 도가(道家)에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경계가 있습니다. 혹여 높은 자리에 미련이 있어 물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미끼를 탐내다 결국 죽게 되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여색을 경계하고 장성해서는 다툼을 경계하며 늙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어’ 공자의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인 듯하다.
김부식(金富軾·1075∼1151)의 본관은 경주(慶州)다. 고려시대 명문 출신으로 문신이자 학자였으며,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삼국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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