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눈 비슷한 게 생겨서 피부과에 갔더니 발을 들여다본 의사가 “많이 걸어 다니느냐”고 물었다. 발이 너무 울퉁불퉁하게 생긴 걸까. 아무려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걸어 다니는 건 사실이다.
내가 지나다니는 한적한 도로변에는 유리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앞까지 크고 작은 유리와 거울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초등학교 때 만화경을 만드느라 동네 유리가게를 드나들던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그 당시만 해도 장난감이라는 게 별로 없어서 만화경들을 만들어 색종이를 넣고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다양한 무늬와 상(像)을 들여다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환상으로 가득 찬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들을 다시 읽다가 만화경이 중요한 사물로 나오는 단편소설 ‘요이야마 회랑’도 보게 되었다. 15년 전에 딸을 잃어버린 삼촌이 ‘똑같은 모양이 두 번 나타나는 일’이 없는 만화경을 종종 홀린 듯이 들여다본다. 어느 날은 눈에 대는 쪽 반대편에 작은 유리구슬이 박혀 있고 망원경처럼 생긴 만화경으로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갑자기 손을 뻗어 허공을 붙든다. 딸이 보이는 것 같아서. 딸이 사라져버린 거리로 삼촌은 그렇게 매일 나간다. 형태가 바뀌고 변형되는 만화경 속의 무늬와 풍경을 위안 삼아.
아들이 죽은 후 고요히 살아가는 노부부의 하루를 그린 오정희 작가의 단편 ‘동경’에서도 만화경은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인상적인 상징으로 읽힌다. 놀이터 벤치에 놓여 있던 이웃집 아이의 만화경을 노인은 품에 감추고 가져와선 아들의 책상 서랍에 넣어둔다. “만화경은 뭐든지 다 보이는 요술 상자래요” 했던 아이의 말과 달리 노인의 눈에 만화경 속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눈이 부시지도 않는다. 만화경의 원리는 각을 이룬 거울의 반사와 대칭에서 생겨난다. 구리거울 ‘동경’에서의 만화경은 언어로만 이루어진, ‘아득한 땅속에 묻힌 거울 빛의 반사의 아름다움과 돌연한 슬픔’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오랜만에 만화경 하나 만들어볼까 하고 조카 손을 잡고 문방구에 갔다. 재료를 팔 거라고 짐작했는데 틀렸다. 역시 유리가게에 가서 똑같은 크기의 직사각형 거울 세 조각을 사와서 만들어야 할까 보다. 천변만화(千變萬化), 즉 ‘끝없이 변화하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만화경(萬華鏡) 생각을 며칠 동안 하고 지낸 이유가 있을 텐데. 그저 옛날 생각이 나서였을까. 어쩌면 내가 어떤 것을 만들고 지었을 때, 어떤 것을 보았을 때 거기에 잠시 아름다움 같은 게 깃들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증식하다, 회전하다, 다채롭다, 변화하다, 비추다라는 동사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걷는다. 봄이 오기 전에, 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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